누군가를 비판하는 이유는 하나다.
여러 이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 이유가 향하는 곳은 한 곳이다. 내가 본 것 그리고 본 것을 바탕으로 한 생각이 전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의 모습을 보고, 문득 떠오른 생각은 지금까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벌어진 상황을 해석하는 거다. 평소에 좋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은 어떤 것이든, 좋은 방향으로 해석한다. 평소에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봤던 사람은, 어떤 것이든 좋지 않은 방향으로 해석한다. 누군가가 친절한 행동을 했다고 하자. 전자의 경우는, ‘역시 이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라고 판단한다. 후자의 경우는, ‘이 사람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로 이러는 거지?’라며 의심한다. 같은 모습이라도, 해석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진다.
비판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그 사람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혹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정확히 알 순 없다. 잘 아는 관계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어느 정도 짐작할 순 있지만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고 확신하긴 어렵다.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말과 행동을 했더라도, 심경의 변화에 따라 다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을 한 이면을 명확하게 확인하지 않고서는 판단하기 어렵다. 잘 아는 사람끼리 큰 오해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잘한다고 생각하니 더 확신하는 거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당사자보다 자신이 그 당사자를 더 잘 안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분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전문가라고 여기면,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에서 벗어난 모든 것들을 비판한다.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으로 여기는 거다. 왜 그렇게 했는지 또는 그렇게 할 수도 있는지를 따져보지 않는다.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한다. 지금까지 자기 경험으로는, 그렇게 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그 분야에 관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전문가가 자기 분야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운 이유이다.
비판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판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이지만,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은 비난이기 때문이다. 비난하는 사람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비난의 화살은 상대방에게 향하지만, 상처는 본인이 더 크게 입는다. 비난한 후에 마음이 편안했는가? 아니면 불편했는가? 이 느낌의 차이만 봐도 알 수 있다. 비난하는 모습을 피하는데, 해야 할 것이 있다. 다른 정보가 들어왔을 때, 단정짓지 않는 거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고 단정하지 않는 거다.
단정하지 말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까?’, ‘어떤 생각에서 그랬을까?’, ‘무슨 의도가 있는 걸까?’ 이 질문들은 생각을 단정으로 이끌지 않는다. 내 중심으로 이끌지 않는다. 생각하게 한다. 이유를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한다. 이해를 돕는 거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질문하는 사람이 비난할 수 있는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비난할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잃는 것이 많을까? 얻는 것이 많을까? 운이 좋으면, 좋은 사람을 얻을 수도 있다. 단정 말고, 이해가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