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과의 결별, 무엇과 결별할 것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에는, 반전이 있다.

관성에 따라 하던 대로 했는데, 누군가가 의문을 제기할 때가 그렇다. 본래 하던 것들은, 왜 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누군가 물으면, 그때 번뜩하고 자각한다. ‘왜, 하고 있지?’ 문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문은 벽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라는 말이다. 문은, 이동하는 통로다. 이동하는 통로가, 이동할 수 없는 벽이 있어야 만들어진다는 거다. 무심코 지나쳤던, 문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문은 벽이 있어야만 의미가 있고, 벽이 있어야 만들 수 있다. 벽이 없는 문은, 아직 보지 못했다.


공용 화장실 문도 그렇다.

들어갈 때는 밀게 되어 있고, 나올 때는 당기게 되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 이유를 들으니 명확하게 이해되었다.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고 들어갈 때가 있다. 무심코 열었는데 사람이 있으면? 밖에서 문을 당기면, 안에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하지만 밖에서 밀면, 안에 있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문을 밀고 당기는 것에도 다 의미가 있다는 말이다. 이 이유를 모르고 반대로 설계하면 어떻게 될까? 난감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


공동체 규정도 마찬가지다.

모든 공동체에는 규정이 있다. 새로운 공동체에 합류하면, 낯선 규정을 마주할 때가 있다. 가끔, 왜 이 규정이 있는지 의심이 든다. 기존에 있던 사람에게 물어보면, 원래부터 있었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왜 그런지 왜 이 규정이 만들어져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어렵다. 이때 알았다. 수시로 규정의 필요성을 따져 봐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관성적으로, 원래 해왔던 것이 지금은 필요 없거나 오히려 불편할 수 있다. 불편하지만, ‘원래 있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계속 흘러가는 거다. 불편하다면 그리고 존재 여부를 의심스럽다면, 이렇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과연 지금, 이 규정이 필요한 것인가?’ 이 질문의 답에 따라, 계속 유지할 것인지 없앨 것인지 아니면 변경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본인이 계속하는 행동이 있다. 루틴이라고 말하는 그것이다. 오랫동안 해왔던 것들이 있고,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것들도 있다. 처음에는 그 목적이 명확하다. 목적이 명확하니, 계획에 포함하는 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언제부턴 가는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계획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이 나를 끌고 간다는 느낌 말이다. 그때는 필요했지만, 지금은 필요하지 않은 계획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매일 혹은 수시로 계획을 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이 행동이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 이것보다 더 필요하거나 나은 계획은 없을까?’ 이 질문을 통해 기존 계획을 계속 유지할지 없앨지 아니면 변경할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책이 있다.

故 구본형 선생님이 집필하신 책이다. 시간이 지나고도 많은 사람이 찾을 정도로, 좋은 메시기가 담겨있다. 출간한 지 20년이 가까이 되는데, 아직도 울림이 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책 제목에서 드러난다.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는 거다. 익숙하다고 모든 것과 결별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결별해야 할 것과 결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과 결별하라고 말하는 거다. 익숙하고 편하다는 이유로 혹은 원래 그랬다는 이유로, 끌어안고 있는 것들이 있다. 결별하지 않으면, 어떤 면에서든 하향 곡선을 그리게 되는 것들이 그렇다. 그런 것들은, 나를 성장 시키고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발목을 잡고 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과의 결별이 필요할 때이다. 내가 이별해야 할 익숙한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살펴보고 하나씩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원하는 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좋은 방향으로 흐르지 못하고 있다면,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필요한 때이다. 이별하는 결단이 그리고 행동이, 내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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