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의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순 없다.

by 청리성 김작가

같은 하늘 아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주인이라는 존재는, 온전히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다. 온전히 복종한다는 말에서, 하나 이상을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상반된 주인이라면 더욱 어렵다. 다른 방향으로 가는 두 사람을 함께 따라갈 순 없는 일이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나는 여기에 덧붙인다. 두 마리를 '한 번에' 잡을 수 없다고 말이다. 모여 있는 두 마리를 한 번에 잡을 가능성은 있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두 마리는, 한 번에 잡을 수 없다. 서로 다른 두 가지를 한 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멀티 플레이'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한다는 의미다. 언제부턴가 멀티 플레이하는 사람을 능력자라고 표현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보이지만, 빠르게 전환할 뿐이라고 한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전환 속도가 빠를 뿐이다. 사람은 동시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순 없다. 이것이 결론이다.


멀티 플레이하는 사람을 능력자라고 표현 한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는 사람은, 능력이 떨어진다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그런 줄 알았지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제는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사람은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그렇게 보이지만, 빠르게 전환할 뿐이라고 한다. 한 번에 여러 개의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이 일에서 저 일로 넘어가는 전환 속도가 빠를 뿐이다. 사람은 동시에,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다.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할 순 없다. 이것이 결론이다.


행동도 마찬가지다.

행동은 크게, 바라는 행동과 바르지 않은 행동으로 나뉜다. 실제 하는 행동은, 대체로 바라지 않는 행동이다. 바라는 행동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것이고, 실제 한 행동은 말 그대로 실제로 하는 행동이다. 이 두 가지가 같으면, 좋은 습관을 지녔다고 말한다. 이 두 가지가 상반되면, 나쁜 습관을 지녔다고 말한다. 목표하고 계획한 행동을 실행하는 것은 얼마나 좋은 습관인가? 많은 사람이 이런 생활을 꿈꾸지만 그렇지 않다. 목표하고 계획한 행동이 아닌,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는 행동을 한다.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거다.


생활 습관이 대표적이다.

운동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운동하지 않은 것은 나쁜 습관이다. 원하는 것은 운동하는 생활이고, 실제 하는 것은 운동하지 않는 생활이다. 운동하는 생활과 운동하지 않는 생활, 이 두 가지를 같이 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말이 되지 않는다. 먹는 습관도 마찬가지다. 좋은 생활은 늦은 시간에 먹지 않는 것이다. 실제 하는 생활은, 먹는 것을 참지 못하고 늦은 시간에 먹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함께 할 수 없다. 먹든지 먹지 않아야 한다.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 포기하지 못해서, 다음날 후회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안다. 잘 참고 다음날 뿌듯함을 느낀 사람도 안다. 무엇이 더 좋은 생활 습관인지를 말이다.


만족과 후회가 교차된다.

바라는 대로 행동했을 때는 만족감이 올라오고, 바라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는 후회가 밀려 온다. 운동하고 난 다음에는 만족감이 올라 오지만, 계획한 운동을 하지 못했을 때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늦은 시간에 먹고 싶은 걸 참은 다음 날에는 뿌듯함이 올라오지만, 먹었을 때는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씩 하는 것도 어렵다. 하나를 하려면 다른 하나는 완전히 접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주인으로 표현한다면, 두 주인을 어정쩡하게 섬길 순 없는 일이다.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가?

내가 바라는 삶으로 이끌어 주는 주인을 섬길 것인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이끄는 주인을 섬길 것인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이끄는 주인을 섬기는 유혹은 매우 강하다. 잠깐의 긴장감을 풀면 한없이 밀고 들어온다. 작은 틈을 허용하면, 그 틈을 밀고 들어온다. 처음에는 작게, 이후에는 점점 크게. 나중에는 틈이 아닌, 그 벽을 허물며 밀고 들어온다. 작은 틈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스스로 타협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이든 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 맞게 할 필요가 있다. 작은 틈을 허락하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끄는 주인을 섬기는 것과 같다. 마음이 그것을 허락하는 것과 같다. 나는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