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방향이, 고통이냐 즐거움이냐를 결정한다.

by 청리성 김작가

시련이 닥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시련을 즐겨 받는 사람은 없다. 시련은 나를 힘들게 하고 나를 괴롭히고 나를 어둠으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시련이 닥치면, 왜 나에게 시련이 나에게 왔는지 원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지금도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런 것들이 계속 일어나는지 한탄스럽기만 하다. SNS에서 본, 한 청년의 글이 생각난다.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는 데, 신은 나를 과대평가 하신 것 같다.” 처음에 이 문장을 읽고, 웃음이 터졌다. 자신의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 유머러스한 한 이 문장의 무게가 느껴졌다. ‘오죽 힘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표현했을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시련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젊었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이 말을 들을 때도, 굳이 고생을 사서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사지 않아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은 다 아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야 깨닫게 됐다. 시련은 될 수 있으면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말이다. 고생이라고 표현해도 좋고 아픔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마음이 갑갑하거나 쓰리고 기운이 빠지는 모든 상황이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 그 시간이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힘든 시간을 잘 보내야, 더 큰 시련도 어렵지 않게 마주할 수 있는 여유를 얻는다.


근력 운동과 같다고 해야 할까?

입시 준비로 운동할 때 그랬다. 모든 운동이 그랬지만, 근력 운동은 특히 더 힘들었다.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더는 힘을 낼 수 없는 상황에서, 한 번을 더 하라고 했다. 도저히 안 된다고 해도 더하라고 했다. 마음속으로 욕이 나올 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게 됐다. 몸에 근력이 붙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느낌도 그렇고 실제 성과도 그랬다. 턱걸이 횟수가 조금씩 늘어났다. 윗몸일으키기도 그랬다. 정해진 시간에 하는 횟수가 조금씩 늘다가, 급격하게 늘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었고, 근력 운동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었다. 근력 운동할 때는 고통스럽지만, 그 시간을 견디면 더 좋은 성과가 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터널에 비유할 수도 있다.

장거리 운전을 하면, 터널을 만나게 된다. 고속도로나 국도, 어디를 달려도 터널은 꼭 만나게 마련이다. 터널은 산을 통과해야 해서 만드는 것이니, 환경 측면에서 볼 때는 안타깝지만, 이동하는 것만 보면 효율적이다. 터널은 특징이 있다. 어둡고 갑갑하다. 구간이 길면 마음이 갑갑할 때도 있다. 긴 터널을 지날 때, 앞에 빛이 보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곧 터널을 빠져나가게 된다는 생각이 그렇게 만든다. 어떤 곳은 터널과 터널이 아닌 곳이 비슷한 길이로 계속 반복되기도 한다.


만약, 터널이 없다면 어떨까?

어디를 가든 지금보다 더 오랜 시간을 들여야 한다. 돌아가야 하니 말이다. 새로운 길이 뚫리고 터널이 생겨서, 1~2시간 단축된 구간도 있다. 터널을 통과하고 싶지 않다면, 돌아가면 된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릴 뿐이다. 답답하지만 터널을 통과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근력 운동을 하는 시간을 견디면,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과 같다. 턱걸이는 더 할 수 있고, 윗몸일으키기를 더 빠르게 할 수 있다.


터널을 마주할 용기를 내야 한다.

터널이 주는 고통에 집중하지 말고, 이득과 즐거움에 집중해야 한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그 시간이 줄 이득과 즐거움을 상상하면 좋다. 힘듦의 무게를 조금은 덜 느끼게 할 수 있다. 상상하는 깊이가 깊을수록, 힘듦의 무게는 더 줄어든다. 이 시간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잘 살펴야 한다. 어떤 방향으로 생각할지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다. 고통과 아픔에 집중할지 이득과 즐거움에 집중할지 선택하면 된다. 선택에 따라 그 몫도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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