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겸손을 배우게 만든다.

by 청리성 김작가

필리핀에서 선교하는 수녀님 말씀을 들었다.

주일 미사 강론 시간이었다. 한 달쯤 전부터, 사용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기부해달라는 공지가 떴었다. 어려운 나라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교구가 충분하지 않으니, 스마트폰이 있다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스마트폰을 요청하신 분이, 바로 이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필리핀에 가신 지는 10개월 정도 되셨다고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겪지 않았던 많은 일을 겪으셨다고 하시면서,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셨다.


알고는 있지만, 실상은 더 심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준비한 동영상을 보여주셨는데 마음이 저렸다. 나도 모르게 작은 탄식이 나오기도 했다. ‘어떻게 저런 환경에서 살 수 있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생활하는 많은 것들이, 그 나라에서는 간절한 것들이었다. 물 한 잔부터 시작해서 먹는 것이 그랬다.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게 행복이 아니라, 그냥 한 끼 먹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성당에서 밥을 해주기도 하는데, 식자재가 부족할 때가 더러 있다고 한다. 국 같은 경우는, 물을 더 부어서 양을 늘린다고 한다. 영양식은커녕 먹는 것 자체로 감사한 생활을 하고 있다.


집도 그랬다.

시멘트와 벽돌로 지어진 집이 아니었다. 그런 집은 간혹 있다고 한다. 버려진 나무나 폐기물로 지은 집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우기(雨期) 때가 되면 집에 물이 들어차는 건 다반사라고 했다. 침대는 박스 종이를 겹겹이 쌓아서 만든 것이라, 물이 들어차면 다 젖는다고 한다. 계속 비가 오니 말린 틈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고 한다. 밤이 되면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운다고 한다. 가뜩이나 더운 날씨인데 집을 지은 자재가 허술하니, 더위를 온전히 견뎌야 한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한다. 몸통은 없고 날개만 달린 선풍기 몇 대가 전부라고 한다.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니, 병도 잘 걸린다고 한다.

위생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이니, 피부 상태는 최악이었다. 사진으로 보여주신 아이들의 모습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성한 곳이 없었다. 약도 변변치 않으니 그냥 그 상태로 견디면서 살아간다고 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에서 벗어나거나 개선되지 않는다면, 계속 좋지 않은 상태로 지낼 수밖에 없다.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져 왔다. 내가 지금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지 알게 됐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 했던 생각이 얼마나 복에 겨운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최악의 환경이라고, 마음도 최악은 아니었다.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다. 환경은 최악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 보였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풍족하진 않지만, 서로 나눈다고 한다. 먹을 것을 나누고, 잠자리가 없으면 공간을 나눈다고 한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하면 없는 가운데 내어놓는다고 한다. 수녀님은 이런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깨닫는다고 하셨다. 당신은 본래 깔끔한 것을 좋아하고, 냄새에 민감하다고 하셨다. 수녀님이 계시기에는 최악의 상황인 거다. 참 힘드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녀님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으셨다고 한다. 겸손을 배우셨다고 한다. 좋은 환경에서 보내다가 열악한 환경을 오면서, 당신을 돌아보셨다고 했다.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데, 실제 경험은 어떨지 어렴풋이 느낌이 왔다.


고난은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겸손을 가르친다.

기고만장하던 사람이 큰 시련을 겪으면 겸손해진다. 나약해지거나 움츠려지는 것과는 다르다. 스스로 과대평가했던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감사하지 못했던 사람과 환경 그리고 상황 등에 감사한 마음을 내게 된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게 바라보지 않게 된다. 자기중심의 삶에서, 타인과 주변 사람들을 살피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겸손은 성숙하게 하고 더 견고하게 만든다. 고난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세상에 그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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