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죽음

by 청리성 김작가
잘 살아낼 때, 값지게 되는 것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아쉬움보다,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쉬움이 전혀 없을 순 없지만, 그래도 미련 없이 떠난다는 것은, 삶을 충실히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라 생각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분들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좋았던 기억도 있겠지만, 아쉬운 부분이 주를 이룬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간호하던 분이 쓰신 책에도, 비슷한 내용을 본 기억이 난다. 죽음의 그림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체기처럼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 있다. 사람마다 살아온 삶이 달라서, 그 내용도 가지각색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다.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하면 이렇다.

첫 번째는, 자기 뜻대로 살아봤으면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살아간다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된다. 대부분 자신의 의지보다, 살아내기 위해, 누군가의 선택에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을 그렇게 하진 못하겠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주변에 불편한 감정이 있던 사람과 화해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좋은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죽음을 맞이하기 전, 할 수 있다면, 불편한 마음을 털어내면 좋을 것 같다.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보낸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가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는, 더 많이 나누지 못한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부족하면 안 될 것 같고, 더 필요할 것 같아서 어떻게든 움켜쥐게 된다. 하지만 떠나는 순간에는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이 말은 참 많이 들었던 이야기지만, 행동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을 들었다고 해서 갑자기 나누는 삶을 살 수는 없겠지만, 나눔의 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된다.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태어나는 것은 출생연도로 순서를 구분하지만, 죽음은 태어난 순서대로 되지 않는다. 성묘하러 가면, 주변의 묘비를 둘러볼 때가 있다. 가끔은 출생연도와 사망 연도를 보고 놀라게 된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 심지어 엄마 아빠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아쉬울까?’

필자는 가끔,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넌지시 건넨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아쉬울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가족의 생계에 대한 걱정을 빼고는 없다. 가진 것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끊임없이 내려놓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집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아쉬움을 남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이런 모습이,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준비라는 생각이 든다. 벌써 죽음을 생각한다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언제 초대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자신이 잘 살아내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죽음에 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면, 잘 살아내고 있다는 방증이다. 현재의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미뤄두지 않고 아쉬움 없이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사람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동경을 하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에 친구에게 만나자는 전화가 온다.

가족을 두고 가기도 그렇고 친구의 만남을 거절하기도 그렇다.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군가는 서운해하고, 당사자도 아쉬움이 남게 된다. 가족과 있으면서 친구를 생각하게 되고, 친구와 있으면서 가족의 걱정을 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가장 현명한 것은, 선택하지 않은 길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뒤돌아볼수록 아쉬움만 커질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선택하고 걸어가는 길을 점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막연한 아쉬움은 불필요하다. 아쉬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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