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길을 어디로 내고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어릴 적 기억 중 떠오르는 게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으로 기억한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그때의 상황은 명확하게 기억난다. 한 친구가 있었다. 체격은 좀 있었지만, 다부진 성격은 아니었다. 싸움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느낌으로 충분히 이길 정도의 친구였다. 어린 나이지만, 무리에 있으면, 누가 좀 강한지 혹은 약한지 대략 가늠이 된다. 함께 놀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그 친구가 흥분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억눌렀던 무언가를 표출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쏟아내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보다는 그나마 좀 만만해 보였나 보다.


한참 쏟아내더니, 주먹을 날렸다.

느린 주먹이라, 나에게 오는 게 다 보였다.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피하지 않았다. 맞았는데, 역시나 아프지 않았다. 가만히 있었다. 때린 친구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타격을 입지 않아서였는지 아니면 덤덤하게 가만히 있던 게 뭣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황했다. 내가 피하지 않은 이유는, 조금이라도 분을 풀라는 의미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피하거나 같이 때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대 때리고 나서는 분이 좀 풀렸는지, 울음을 멈추고 목소리도 차분하게 내려앉았다. 어찌해서 잘 마무리하고 그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스스로 대견하게 느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이 기억이 남은 이유는, 이 느낌 때문이지 않을까? 큰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알았을 거다. 싸움이 붙었으면 내가 이겼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한 대 맞아주고 참았다는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내가 피한 건 비겁해서가 아니라, 관대함이라고 불러도 좋을 마음으로 참았던 것이니 그렇다. 이후에도 친구들과 싸움을 한 적은 없었다. 싸움 자체를 싫어하기도 했고, 다행히(?) 시비를 거는 친구도 없었다.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했을 싸움을 하지 않은 것이, 이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번 참아봤으니, 이후에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일 수도.


한 번 화를 내면 계속 화를 내게 된다.

화에 대한 역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싸움도 마찬가지다. 싸움하지 않던 사람이 싸움에 말리면, 다음에는 그보다 작은 일로 싸움에 말릴 때가 많다. 싸우지 않으려는 인내의 역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화를 내는 것도 습관이라는 말이 있는데, 틀리지 않아 보인다. 습관처럼 자기도 모르게 드러내게 된다. 별거 아닌 것으로 역정을 내거나 짜증 내는 사람이 주변에 한둘은 있을 거다. 그 사람을 가만히 보면, 역치가 매우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별거 아닌 것으로 버럭 대는데, 잘못 이해해서일 때가 많다. 자기를 무시했다고 여기는 거다. 상대방은 의도 없이 한 말인데 그렇게 받아들인다. 농담으로 한 말인데도 그렇게 받아들인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어보면, 더는 말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말은커녕, 될 수 있는 대로, 함께 하는 자리를 피하게 된다. 함께 있어서 좋을 게 없으니 말이다.


길은 계속 가면 만들어지고 짙어진다.

화를 내는 길도 그렇고 짜증을 내는 길도 그렇다. 모든 길이 그렇다. 인내로 걸으면, 인내의 길이 깊어진다. 사랑의 마음으로 걸으면, 사랑의 마음이 깊어진다. 어떤 길이든, 의도하고 갔던 길이 더 잘 만들어지고 짙어진다. 의도와는 다르게, 가끔 샛길로 샐 때가 있다. 인내와 사랑 그리고 존중과 겸손 등의 길로 가려는데, 짜증과 불신의 길로 새는 거다.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여기는 순간 되돌아 나와야 한다. 우물쭈물하면서 계속 가면, 그 길에 익숙해지기 쉽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지나게 되면, 이후에는 자연스레 그 길로 간다. 인내의 길로 가던 발걸음을 짜증의 길로 돌리는 거다. 몇 번 갔다고 그 길이 익숙해진다. 인내, 사랑, 존중, 배려 등의 길과는 멀어지게 된다. 괜찮은가? 그 길에서 벗어나도 괜찮은가? 아니라면, 잘못 들어선 길에서 얼른 나와 원하는 길로 걸어가야 한다. 오역이라고 알려진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 메시지를 잘 기억해야 한다. 마음이 자주 가는 길도, 우물쭈물하다가 후회로 물들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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