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진 않지만….”
중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한다. 라디오를 들으며 숙제를 하고 있었다. 신인 가수라고 하는 사람이 나와 인터뷰하고 있었다. 데뷔한 지 3개월 정도 됐다고 했다. 대전 카페에서 통기타 가수로 활동했다는 소개를 했고, 중학생 때 아빠인지 삼촌인지가 선물해 준 기타가 자기를 지금의 자리에 서게 했다고 소개했다. 한쪽 귀퉁이에 얌전히 누워있던 기타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삼촌이 생일 선물인지 아니면 그냥 어디서 주웠는지 기타를 선물해 줬다.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웬 기타?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왜 기타를 선물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후에도 물어보진 않았다. 그런가 보다 하면서 듣고 있는데, 노래 첫 소절이 나왔다. 순간 모든 동작을 멈췄다. 아니, 멈추게 했다. 동네에 하얀 연기를 내뿜는 소독차가 돌아다녔는데, 그 안에 빠져들어서 놀곤 했다. 하얀 연기가 온몸을 소독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노래가 그랬다.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냥 푹 빠져들었다. 그랬던 적이 없었는데, 노래를 듣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테이프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테이프를 사서 듣고 또 들었다. 그리고 부르고 또 불렀다. 테이프에 있는 모든 곡을 다 외울 정도였다. 그렇게 내 삶의 첫 가수는 신승훈이 되었다.
체화된 것처럼 언제 어느 때고 이 노래가 입에서 자동으로 흘러나왔다.
친구들의 반응이 좋았다.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가수의 노래여서인 것도 있지만, 또 있다. 아! 노래를 잘 불러서도 아니었다.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호응이 좋았으니 당연히 그런 줄 알았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노래를 잘 부른 건 아니었다. 목소리가 똑같다고 했다. 처음에는 비슷하다고 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똑같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런 말을 들을수록 더 빠져들었다. 남자가 남자 가수한테 빠지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노래가 좋아서 호감을 느끼는 정도지, 좋아하는 건 아무래도 좀 그렇다. 신승훈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친구들은 한창 유행하던 포스터나 책받침 사진을 나에게 주기도 했다. 남녀공학이었는데, 여자애들이 자기가 어렵게 구했다며 건네기도 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말이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남자한테 남자 사진이라니. 아무튼. 다른 학교도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앞에 나가서 노래 부를 일이 많았다.
우리 반에서 부르는 건 다반사였고, 심지어 다른 반으로 출장(?)을 가기도 했다.
선생님이 불러서 갔다. 선생님들도 반응이 좋았다. 쉬는 시간이면 친구들이 주위에 모였다. 노래를 불러 달라는 거였다. 그러면 조곤조곤 노래를 불러줬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맞춤형 노래로 불러줬다. 짝사랑하는 친구, 시련 당하고 온 친구, 그냥 노래가 듣고 싶은 친구 등등. 기억으로는 3집까지 모든 노래를 외웠다. 외우려고 외우건 아니었다. 듣고 부르고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 원하는 곡을 듣기 위해서는 테이프를 돌려야 했다. 앞으로든 뒤로든 돌려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곡명만 대면 그냥 나왔다. 그래서였는지 찾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녹음 요청이 들어오기까지 했다.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다. 공테이프를 가득 사서 조용한 시간 방에서 녹음했다. 카세트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노래를 불렀다. 몇 개를 돌렸는지는 모른다. 가끔 이 생각하면 하나쯤 남겨둘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때 이야기를 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고, 그때의 담아둔 목소리를 또 듣게 된다면 어떨지 해서다. 그때는 참 목소리가 맑았는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니, 성가도 크게 불렀다.
미사 시간에 성가를 크게 불렀는데, 그러면 주변 애들이 희한하게 쳐다봤다. 미사 시간에 성가를 크게 부르는 사람은, 성가대 아이들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독특한 놈 하나가 중간에 어울리지 않게 껴있던 거다. 끓어오르는 노래 욕심은 버릴 수 없어서, 개의치 않고 불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점점 쪼그라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혼자서 그렇게 튀는 모습을 감당하는 게 쉽진 않았다. 이 애매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간단했다. 성가대에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노래를 우렁차게 부르는 것 말고는 매우 소심했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거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려웠다.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아는 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꺼렸다. 성가대는 2층에 있었는데, 그곳에 올라가서, 소리 높여 성가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미사 시간마다 가득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귀인(?)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갔는데, 우리 반에 성가대 반주자가 있었던 거다. 거기다 성가대 단원까지. 이것도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도 신승훈을 좋아했다. 공감대가 형성된 거다. 공감대만큼 마음의 빗장을 풀어주는 좋은 열쇠는 없다. 그래도 먼저 성가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하긴 왠지 멋쩍었다. 이런저런 다른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가 물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