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도 있었다.
군대에 가면 말랐던 사람이 살이 찐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 그랬다. 입대할 당시에는 60kg이 되지 않았다. 뼈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 밥을 먹으려 살이 쪘는데, 70kg 가까이 가기도 했다. 누우면 숨쉬기가 불편할 정도였다. 얼굴이 동굴 해졌고 배도 볼록해졌다. 오죽했으면 별명이 돼지였겠는가.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는 별명이었다. 지인들한테 이야기하면 안 믿는 표정이다. 나도 믿기지 않으니 당연하다. 체육교육과라는 것을 아는 선임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같은 부대에 있던 지방의 한 체육과 선임도 있었는데, 그는 나와 완전히 달랐다. 육체미 대회에 나갈 정도로 몸이 좋았다. 틈틈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는데, 군살 하나 없었다. 그는 내가 자기와 같은 계열이라는 게 창피한 모양이었다. 눈치가 그랬다. 기회가 되면 체육인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마침 기회가 왔다. 소대별 구보 대회가 열렸다. 거리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마라톤처럼 지역 어딘가를 돌고 오는 거였다. 참가한 사람이 족히 50명은 넘어 보였다. 한 선임이 10등 안에 들면 빵을 사주겠다며, 비웃었다. 그럴 리 없다는 것에 올인한 모양이었다. 입대 전에도 특기가 오래달리기였던 나였다. 어떤 종목보다 자신 있다는 말이다. 야심 차게 출발했다. 결과는? 2등이었다. 모두가 놀랐지만, 난 아쉬웠다. 1등을 따라잡고 싶었으나, 어림없었기 때문이었다. 후임이었는데 물어보니 체육을 전공한 것도 아니었다. 체육인으로 자존심이 좀 상했었다. 내 마음과 달리, 소대에서는 난리가 났다. 빵을 사주겠다던 선임은, 저 돼지가 빵 먹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뛰었다며 난리를 쳤다. 독기가 장난이 아니라는 거다. 아! 나이도 어리고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었는데, 뭐 어쩔 수 있겠는가. 그 선임이 빵을 사줬는지 안 사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기분 나빴던 기억이 전부였다. 그때부터 나의 존재감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소대 축구 시합에도 나가서 골을 넣기도 했다. 돼지 취급받던 나는 어느새, 병장들한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귀염둥이가 됐다. 열악한 피엑스였지만, 그곳에서 가장 귀한 ‘애플파이’를 얻어먹던 기억도 난다.
또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백령도 부대에서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게 있었다. 포상 휴가다. 포상 휴가를 받아서 나간 사람이 거의 없다고 했다. 육지에서는 조금만 뭐를 잘해도 툭하면 포상 휴가를 나간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섬 전체에서 특출나도 나가기 어려운 게 포상휴가였다. 가끔 부대별 시합을 한다. 포항 김포 백령도 부대끼리 겨루는 거다. 거기서 소대가 일등을 했는데도 포상 휴가는 없었다. 포상 휴가를 받을 수 있는 공식적인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상병 때였나 그랬으니까, 어깨 좀 펴고 뭐를 좀 해도 눈치가 보이지 않던 시절이어서 가능했다. 그건 바로, ‘청룡축제’라는 거였다. 여름 바닷가에서 해병대뿐만 아니라 전 군을 대상으로 축제를 열었다. 그것이 바로, ‘청룡 축제’였다. 여기서 1등 하면 9박 10일의 포상 휴가가 주어진다는 거였다. 종목은 정해져 있었다. 육체미, 골체미(마른 정도), 깜상(까만 정도)이 기본이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다. 바로, 장기자랑. 이 때문에 섬 주민들도 와서 구경한다. 부대뿐만 아니라 섬 축제인 거다. 중대 인원 몇몇이 모였다. 우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차력을 하기로 했다. 무술인들이 몇몇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중에 누군가 차력 비슷한 걸 했다는 후임이 있었다. 그 친구의 추진력으로 하게 되었다. 잘 준비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확 들진 않았다. 너무 진지하다는 게 이유였다. 우리가 차력 전문가도 아닌데, 어설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됐다. 축제 며칠 전, 방향을 틀었다. 그냥 차력이 아니라 코믹 차력을 하기로 말이다. 불쇼나 쇠를 휘게 하는 멋진 것도 하지만, 일단 재미있게 가자는 게 핵심이었다. 준비하던 우리도 웃겨서 나뒹굴기도 했다. 마지막은 합을 맞춘 액션을 보여주는 거였다. 바닷가라 모래 바닥이니 마음껏 돌고 넘어져도 괜찮았다. 관중이 있었고, 포상 휴가가 달려 있으니 더욱 힘이 났다. 결과는 어땠을까? 1등이었다. 순위 안에만 들어도 포상 휴가를 가니, 순위 안에만 들자고 했는데, 전체 1등을 한 거였다. 중대에서는 처음이라며, 복도에 중대를 빛낸 사람들이라고 액자를 걸어주었다. 우리 말고 중대에 순위권에 든 팀이 2명 정도 더 있었는데, 함께 걸리게 되었다. 지금도 걸려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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