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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중간 점검

by 청리성 김작가

얼마나 지났을까?

영광은 군대의 추억에 젖어 잠시 정신 줄을 놓은 것을 느꼈다. 이십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그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린다. 영광은 시간이 한참 지나도 군대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리라고 확신했다. 잊고 싶지도 않았다. 대학도 선택해서 왔지만, 스스로 선택한 사회생활의 한 페이지였으니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것도 정글과도 같은, 스스로 생존해야 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군대 이야기할 때 자연스레 말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도 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짧은 시간에 할 말이 참 많다. 특수한 상황 때문일지도 모르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먹고 자면서 몸을 부대껴서 그런 게 아닐지 싶다. 영광은 군대에 대한 평균 점수를 높게 평가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 경험도 있지만, 그 시간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직접 도움이 되는 건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보내며 성장한 마음이, 알게 모르게 삶의 어려움을 받쳐주고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아차리고 있었다. 주로, 사람 관계에 관련된 거다. 군대만큼 상명하복이 뚜렷한 곳이 없다. 더 최악인 거는, 보고 싶지 않다고 볼 수 없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심지어 한 방에서 같이 보낸다. 한 시도 떨어져 있기 어렵다. 그래서 근무 나가는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좋은 선임과 함께 나가는 근무 시간은 잠자는 시간만큼 꿀 같은 시간이었다. 나이가 지긋하게 있는 선임으로부터는 좋은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기억나는 건 없지만 말이다. 느낌은 기억한다. 바람이 선선하게 부는 날이면,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밤중에 나간 근무에서 선임이 자는 날이면, 한동안 눈뜨고 하는 깊은 명상에 빠지기도 했다. 멀리서 보이는 또렷한 불빛의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을 끄집어 올렸었다. 10% 정도 차지하는 그 시간이, 다른 90%의 힘듦을 어느 정도 상쇄시켜주었다는 것을 영광은 잘 알고 있었다.


영광은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은 군 생활까지 돌이켜봤다.

삶의 의미에서도 전환점이고 숫자로 따져도 거의 절반쯤에 걸쳐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 시간에 벌써 삶의 절반을 돌아본 거다. 영광은 짧은 시간에 스쳐 보낸 삶의 절반을 생각하니, 인생 참 별거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나면 다 부질없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뭘 그렇게 움켜쥐려고 했는지, 씁쓸한 미소와 함께 고개가 좌우로 천천히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영광은 쟁반에 있던 냅킨을 들고 입을 닦은 후, 자리를 정리했다. 절반의 인생을 돌아본 이 시점쯤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축구도 전후반이 있는 것처럼, 삶의 전반전을 돌아봤으니 후반전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바람을 쐬고 싶었다. 그리고 후반전은 조금은 더 천천히 돌이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쉰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가, 하루 아니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다 끝난다는 게 좀 그랬다.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이 별로 없다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너무 짧게 마치고 싶진 않았다.


영광은 쟁반을 카운더에 두고 들어왔던 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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