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잠시 멈춰서 호수 쪽으로 걸어갔다.
난간에 두 팔을 걸치고 팔 위에 턱을 걸쳤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날의 모습과 느낌이 생생했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전화하던 곳은 어디였는지 자세는 어땠는지 그리고 불합격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는지 등을 말이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우리 방이었고 침대를 오른쪽에 두고 걸쳐 앉았었다. 전화를 끊고 전화를 들던 손이 자연스레 허벅지 위로 흘러내렸다. 그리곤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는, 차마 묻지는 못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볼 뿐이었다. 천천히 일어나 “가자” 한마디를 던지고 먼저 앞장섰다. 밖을 나섰을 때 바람을 불지 않았지만,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는 것을 기억한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눈은 평소보다 커 보였고 많아 보였다. 그렇게 말없이 걸었다. 영광의 아내 역시 말없이 영광의 팔을 붙잡고 아무 말없이 따라 걸었다. 누구보다 간절하게 기도하면서 기다렸을 아내지만, 영광은 그런 아내의 심정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떨어졌다는 사실에 오랜 시간 침울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영광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무책임하게 떨어져 내리는 눈처럼, 지금 현실이 매우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누구한테 그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자신한테 이런 상황이 올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모의고사 성적도 잘 나왔다. 아무리 실수 하나 했다고 해도, 다른 것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을 만큼 시험도 잘 봤다. 그런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시험 점수를 알고 몇 번째로 떨어졌는지 라도 알았다면 어땠을까. 영광을 고개를 가로저었다. 점수를 알았더라도 몇 번째로 떨어졌더라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떨어졌다는 사실이었고, 당장 먹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현실이었다. 참으로 어리석었고 참으로 대책 없는 일 년은 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어떻게 합격을 스스로가 장담할 수 있다는 말인가. 떨어지고 나니 모든 게 다 아쉬움이었고 후회였다. 지금 알아차린 것을, 그때도 알아차렸다면 어땠을까? 아니다. 알고 있었다. 영광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 그거 하나였다. 다른 사람들도 다 열심히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영광은,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던 판단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이때를 꼽을 것이라 주저 없이 말할 것이라 확신했다. 그때의 여파가 지금까지 밀려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광은 잠시 고개를 떨궜다가 찬찬히 고개를 들었다.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그것에 발목 잡힌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 마음을 강물에 집어 던져버렸다. 그리곤 다시 호수에서 멀어져 걷기 시작했다.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보통은 2~3년 준비하는 게 임용고시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다. 결혼도 했고 아이까지 생기니 말이다. 아쉬웠지만, 바로 접었다. 아쉬움이라는 감정에 둥둥 떠다닐 여력이 없었다. 바로 돈벌이를 해야 했다. 합격해서 교사가 되면, 대출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생활비는 카드사와 그 외 대출받을 수 있는 곳에 돈을 끌어와서 쓰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시험 준비를 할까 했지만, 온전히 집중하자는 마음에 하지 않았다. 빚의 구렁에 빠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당장 먹을 것도 먹을 것이지만, 대출을 상환하는 것도 문제였다. 떠올랐던 건, 유아 체육을 했던 회사였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밖에 없었다. 세상 물정을 몰라도 너무 몰랐기에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지도 몰랐던 거다. 임용 시험 이거 하나에만 올인했다. 하나만 생각하고 그 하나를 잃으니, 전부를 잃게 되었다.
다행히도 바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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