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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위기가 다시 기회로.

by 청리성 김작가

영광은 다시 걷던 길을 멈추고 벤치에 앉았다.

다시 잊지 못할 기억. 아직도 선명하고 뚜렷하게 떠올리게 되는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20년 결혼 생활 중 중간 지점인 10년이 조금 더 지난 시점이었다. 아이들 나이가 다 한 자리였으니, 참 어렸다. 아이도 어렸고 자신도 어렸고 그의 아내도 어렸다. 뭣도 모르고 영광만을 바라보는 식구가 네 명이나 되었다. 평소에는 깃털 같은 그들의 무게가 이런 위기를 맞이하자,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되어 얹히게 되었다. 어느 방향으로 선택해도 막다른 길이라는 것 그리고 더는 갈 길이 없다는 사실이 몸과 마음을 옥죄여왔다. 임용고시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보다 더 큰 압박감과 위기감을 느꼈다. 나이도 더 들었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막막함이 그렇게 만들었다. 선택지가 그래도 있을 때와 선택지를 살필 여건조차 되지 않은 상황은 천지 차이다.


위기가 기회로 들이닥친 상황이었다.

기회가 위기가 되고, 위기가 기회가 된다더니 진짜 그랬다. 인생을 그래프로 표현하면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 폭이 매우 컸다. 영광은 생각했다. 만약 이때 신앙이 없었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지를 말이다. 그러고 보면 삶의 여정을 돌아볼 때 직접 언급한 부분은 별로 없었지만, 모든 과정이 신앙이라는 굵은 줄기를 따라 이어져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랬다. 영광의 삶은 많은 우여곡절도 있고 위기와 기회도 번갈아 가며 찾아왔지만, 그 안의 중심은 신앙이었다. 긴박했던 위기 상황도 그랬다. 그때 신앙이 없었더라면 그리고 그때 깊은 신앙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오묘한 섭리다. 그렇게밖에는 설명할 방법을 영광은 찾지 못했다. 그냥이듯 하지만 그냥이 없었다. 돌아보면 그렇다. 끼워 맞추는 것 아니냐고 물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억지는 없다. 결과론적이라고 해도 그렇다. 결과가 나온 상태에서는 어떠한 해석도 통용된다. 얼마나 설득력이 강하냐에 따라 인정하고 그렇지 않고를 가를 따름이다. 이렇게 따져봐도 저렇게 따져봐도, 영광은 처음의 생각을 바꾸지 않을 작정이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른 그 어떤 이유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광은 어디선가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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