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으로 얻을 수 있는 몫

by 청리성 김작가

불편한 관계를 맞이할 때가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각 차이가 대부분이다. 타인의 이해되지 않은 행동으로 불편한 마음을 갖는 것도 마찬가지다. 행동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지만, 그 불편함 이면에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 깔려있다.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지?’ 이 생각은 행동 자체가 아니라, 행동을 유발한 생각을 말한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며 한마디씩 한다. 소위 말하는, 뒷말이다. 뒷말하는 이유도 결국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보다, 그 모습을 비판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다른 것을, 틀렸다고 단정하면 비판하게 된다. 틀렸는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다름과 틀림은 완전히 다른 사고의 방향으로 이끈다. 다름은 인정하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틀림은 지적하고 고쳐주어야 할 영역이다. 아이들을 훈육하는 것도 그렇지 않은가? 틀렸으니 고쳐줘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말을 꺼낸다. 다르다고 여겼다면, 물어볼 거다. “왜 그렇게 하는 거야?”라고 말이다. 다름과 틀림을 구분하는 기준은 이렇다.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면, 틀렸다고 여기는 거다.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다르다고 여기는 거다. 지적과 질문이 틀림과 다름을 구분한다.


최근, 이런 일로 큰 소리가 오간 일이 있었다.

내가 큰 소리를 낸 건 아니다. 상대방이 큰소리를 냈다. 방방 뛰면서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가 틀렸다고 여기는 것을 알아차렸다.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이고 나름대로 다른 생각을 했던 것인데, 틀렸다고 윽박질렀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조금 더 지나니 화가 났다. ‘어떻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지?’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조금 더 이야기를 들으니, 왜 이 사람이 이렇게 흥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고, 자기 생각을 들어주고 알아주길 원했다는 사실이다. 자기의 답답한 심정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더 나아가서는 방법을 찾아주길 원했다.


그 사람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이 이러는 것은, 이러저러한 상황 때문이라는 거죠?” 그렇다고 했다. 이후에는 설명했다.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 알았으니, 그 부분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대화가 계속 헛도는 이유는, 서로 아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이다. 대화를 원활하게 이어가기 위해서는, 같은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 설명했지만, 자기 생각이 가득해서 바로 이해하지는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몇 번을 설명하면서 이 사람의 또 다른 욕구를 알아차렸다. 내가 한 대처에 관한 불만이었다. 내가 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는 알 수 없다. 정답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감하기로 했다.

불만이 있는 사람의 말은, 잘 듣고 공감해 주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부분은 잘못된 것이 맞는다.”라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 의도는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게 된, 도의적인 책임을 인정하는 거다. 무조건 아니라고 하는 것은, 불만만 더 키울 뿐이다. 분명한 건, 문제 자체를 잘못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동감이 아닌, 공감했다. 동감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면, 공감은 다르다. 나는 그렇지 않지만, ‘당신이라면 그럴 수 있겠네!’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공감이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동감하긴 어렵지만, 공감은 가능하다. 내가 아닌, 당신 처지라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알아차리고 설명했다.

조금씩 누그러졌다. 내가 어떻게 조치할지까지 설명했다. 그 부분에 동의했다. 본인이 원하는 결과를 제안하니 수용한 듯하다. 대화는 잘 마무리되었다. 2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대화 시작할 때와 마칠 때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여기에 더해, 평소 요구하고 싶던 것까지 얹어서 대화를 나누고 마무리했다. 최악이라고 여겼던 상황에서, 얻고 싶은 것까지 받아낸 거다. 대화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 말을 들어주길 바라고 공감해 주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다음이다. 최악의 상황을 최상의 상황으로 바꾸는 가장 강력한 도구는, 공감이다. 공감은 들어주고 이해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어렵지만 그걸 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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