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의 집>에서 ‘이노주사 WYD 청사희망’ 찬양을 진행했다.
<안나의 집>은 예전부터 들어왔던 곳이다. 대략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곳을 운영하고 계신 김하종 신부님은 이탈리아에서 오신 분이다. 외국인인데 이름을 어떻게 지으셨을까? 설명하면 이렇다. 김대건 신부의 김, 하느님의 하, 하느님의 종. 이렇게 지으셨다고 한다. <안나의 집> 이름도 이렇게 설명한다. “항상 소외계층을 위해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는 (집)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참 의미 있게 지은 이름이라 생각되는데, 실제 이름을 지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1998년 IMF로 인해 사회적으로 불안할 때 봉사자인 오 마태오님은 김하종 신부님과 뜻을 같이 하면서 어려운 이웃과 노숙인을 위한 식당운영에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돌아가신 오 마태오님의 어머님을 기억하기 위해, 어머님의 본명인 “안나”를 따서 <안나의 집>으로 열게 되었다는 거다. 이름을 지은 계기는 이렇지만, 그 의미를 잘 표현한 설명인,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가 되는 (집)이 참 의미 있게 다가왔다.
<안나의 집>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홈페이지 인사말에서 명확하게 잘 소개되어 있다. “안나의 집을 표현하자면 배고픈 이들에게는 아름다운 식당이고 외로운 독거노인에게는 가족이 되어주며 아픈 사람에게는 야전 병원이며 가출청소년들에게는 희망을 주는 곳입니다. 혹한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는 따스한 둥지가 되고 있습니다.” 배고픈 사람, 외로운 사람, 아픈 사람, 어려움에 부닥친 청소년, 추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는 거다. 이 모든 사람을 한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한 문장을, <안나의 집> 기도실 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고통받는 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입니다.”
찬양을 마치고 김하종 신부님께서 모두를, 기도실 앞에 불러 모으셨다. 그 앞에서 이 문장을 읽도록 하시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어디 계시나요? 우리는, 성전 성체 우리 마음 등을 이야기했다. 그것도 맞는다고 하시면서, 고통받은 사람들 안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곧,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누구와 함께해야겠냐고 질문하셨다. 당신은 매일,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와 함께하신다고 하셨다. 신부님의 삶이 그리고 <안나의 집>의 존재가 무엇인지, 어떤 설명보다 깊이 있게 이해되었다.
성탄절을 맞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지금.
예수님의 탄생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 진정 예수님과 함께하는 것인지를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닌, 내가 필요한 곳 그리고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그곳에 머무는 것이 아닐지 싶다. 여러 사정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필요한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는 삶. 이것이 진정으로 나눌 수 있는 자선이지 않을까? 여유가 있어서 혹은 남아서가 아니라, 그냥 내어줄 수 있는 것 말이다. 찬양 마지막 곡으로 ‘사랑의 송가’를 함께 불렀는데, 그 가사의 의미도 더 깊이 다가왔다. 그 어떤 좋은 것을 수식어로 다 붙여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깊이 새기며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