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모임에 가면 꼭 하는 게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소개하는 시간이다. 모두가 처음 만나는 자리라면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니 부담이 덜하다. 하지만 새롭게 합류하는 모임에서는 혼자 소개해야 하니 부담된다. 사람이 많은 자리면 더 그렇다.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된다. 고민되는 이유는, 다양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존재는 하나지만, 내가 하는 역할은 다양하다. 무엇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감해지는 이유다. 모임의 목적이 뚜렷하면 그나마 낫다. 모임의 목적에 맞는 역할을 소개하면 되기 때문이다. 종교와 관련된 모임이라면, 종교와 관련해서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설명하면서 소개할 수 있다. 비즈니스 자리라면, 하는 일과 직책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소개할 수 있다. 색깔이 뚜렷하면 그 색깔에 맞는 역할을 소개하면 된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자리다.
친목 모임이나 다양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지 난감하다. 직업을 이야기해야 할지 혹은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야기할지 아니면 잘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헷갈린다. 여럿이 소개할 때는, 앞사람이 하는 형식을 빌려 하기도 한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의미는 여기서도 통용된다. 처음 소개하는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비슷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획기적으로(?) 방향을 틀지 않는 이상 말이다. 일시적인 자리라면 어떻게 소개하든 크게 상관없지만, 일시적인 자리가 아니라, 계속 이어지는 모임이라면 다르다. 내가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무심히 한 말이던 심사숙고해서 한 말이던,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것을 기억한다. 기억하는 것을 알기에, 어설프게 소개하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
자기소개는, 이 질문에 답하는 자리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 자리다.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현재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일까? 가장 현실적일 수 있다. 지금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면, 내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알릴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뭔가 좀 아쉽다. 왜 그럴까? 지금 내 위치와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모습은 지금까지 지내온 나의 결과물인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굳이 장황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내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리는 방법은 따로 있다.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풀어내는 거다.
지금의 나는 멈춰선 내가 아니다. 계속 움직이는 나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도 결국, 과거가 된다. 따라서 나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의 내가 아닌, 지금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좋다. 나아가는 방향으로 설명하면, 지금까지의 모습과 현재의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목표까지 연결해서 풀어낼 수 있다. 내가 누구인지 잘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내가 누구냐고 설명하는 것은, 어디로 향해서 가고 있냐는 질문에 관한 답과 같다. 이 질문에 답할 시간이다.
“지금 나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