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다.
마음에 거슬리는 말을 듣거나, 모습을 볼 때다. 이때 들리는 말이나 모습은, 날 것이다. 날 것이라는 의미는, 이유나 상황을 배제한 그 자체라는 거다. 묻거나 확인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것. 당사자가 아닌 이상, 말과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없는 그것이다. 오해하게 된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면 섣부르게 판단한 자신을 원망하기도 한다. 사정이 딱한 것이라면, 미안한 마음도 올라온다. 당연히 그럴 수 있겠다고, 이해하는 마음도 생긴다. 알지 못하면 판단하고 오해하지만, 알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난폭하게 운전하는 차량을 본다.
뭐가 급한지 차선을 이리저리 옮기고 급발진과 급정거를 반복한다. 위험해 보인다. 이런 차량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운전을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을 거다. 성격이 난폭하거나 운전을 잘못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나는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었나?’ 아니다.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했다. 시간에 쫓겨서 운전할 때와 어딘가를 급하게 가야 할 상황에 부닥쳤었다. 어땠는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게 운전했는가? 끼어드는 차량에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못 들어오게 바짝 붙었다. 틈만 나면 차선을 옮기고 끼어들기도 과감하게 했다. 난폭하게 여겼던 차량과 다르지 않게 운전했다.
상황은 같지만, 해석은 시선에 따라 갈린다.
판단의 시선으로 보면 지적하게 되고 불편하게 여기게 된다. 이해의 시선은 어떨까? 포용하게 되고 공감하게 된다. 같은 상황이지만, 시선에 따라 해석은 극명하게 갈린다. 내가 상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판단하려고 하는가? 이해하려고 하는가? 즉각적인 반응은, 판단에 가깝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판단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본능이다. 맹수가 달려드는데 빠르게 판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먹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판단은 나쁜 것이 아니라, 본능이다. 따라서 이후가 중요하다. 판단의 시선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해로 시선을 돌릴 것인지.
의식적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판단의 시선에서 이해의 시선으로 옮겨야 한다. 이해의 시선으로 옮기는 노력은, 타인을 바라보는 마음이 달라져서 좋고, 자기 자신에게도 좋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불편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화를 내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니다. 평화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평화로운 마음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나 자신이 만들 수 있다. 시선을 바꾸는 노력으로 가능하다. 작은 상황이라도 이해의 시선으로 옮기는 노력을 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된다. 어렵지만, 그 어려운 것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