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행동을 바로잡을, 용기를 가지고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비겁한 사람이 있다.

아니, 우리는 누구나 비겁했던 적이 한 번쯤은 있다. 의도해서 비겁한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본의 아니게 비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이, 우선 발휘됐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비겁한 행동을 했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비난하기는 어렵다.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행동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본능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타고난 성향이다.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옳고 그름의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정당화될 순 없다. 바로 잡아야 한다. 본능으로 행동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와 아쉬움이 올라온 적이 있을 거다.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그대로 두든지 바로 잡든지. 전자는 비겁한 선택이고, 후자는 비겁한 선택을 바로 잡은 선택이다.


비겁한 모습을 경험한 기억이 있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이 회식하기로 했다. 항상 가던 곳이 아닌 새로운 곳에 갔으면 하는 바람들이 있었다. 인원도 많고 새로운 곳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지나가던 길에 몇몇이 한 식당을 추천했다. 그들이 가봤는데 괜찮다는 의견이었다. 겉으로 봤을 때 괜찮아 보였다. 식당도 크고 새로운 메뉴도 보였다. 고민하지 않고 바로 선택했다. 다른 사람들도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회식 당일. 자리에 앉아서 주문하고 음식을 먹었다. 삼겹살이었다. 하지만 기름이 거의 없었다. 삼겹살은 기름이 좀 나와야 제맛인데 말이다. 먼지를 많이 먹은 날, 삼겹살을 먹는 이유도 기름 때문이 아닌가? 먼지를 기름으로 씻어내려는 의도로 말이다. 기름에 김치나 채소 등을 구워 먹는 것도 별미인데, 그러지 못했다. 결정적인 건, 맛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기름기 없는 삼겹살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불만이 쏟아졌고,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 쏠렸다. 가장 높으신 분도, 한 소리 하셨다. 추천했던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해했다. 자기를 지키려는 본능이니까.


며칠이 지나고, 소규모 식사 자리가 있었다.

고깃집을 추천했던 한 분과 가장 높으신 분과의 식사 자리였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회식 장소 이야기가 나왔다. 다시 한번 한 소리를 들었다. 비난까지는 아니었고, 가볍게 한 번 더 이야기하는 정도였다. 문제는 이때였다. 시간이 지났으니, 사실을 이야기해도 비난하거나 뭐라고 하지 않았을 자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도,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로잡을 수 있는 혹은 조금은 거들어 줄 기회였는데 피했다. 비겁하다는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장면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서운한 것을 넘어, 참 비겁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나이라도 어리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나이도 좀 있는 분이 그러니 더 마음이 씁쓸했다. 본능에 따른 행동을 바로 고쳐잡기 어렵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바로 잡을 기회가 왔음에도 외면하는 것은, 본능이 아니라, 비겁한 행동이다. 의도한 비겁함은 이해하기 어렵다.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도 중요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