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회의나 논의하면, 꼭 벌어지는 진풍경이 있다.

자기가 들은 말이 맞는지 확인하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각자의 말이 맞는다며 갑론을박을 벌인다. 전달받은 내용이나 논의한 내용을 다르게 해석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전달하는 사람이 명확하게 전달하지 않아서일까? 그럴 수 있다.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면 해석의 차이가 날 수 있다. “많이”, “좋게”, “포용하는” 등의 표현은, 기준이 다르니 서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논의한 내용은 어떤가? 논의만 하고 정리가 되지 않으면, 서로 헷갈릴 수 있다. 전달하는 내용이라면, 누구나 같은 내용으로 이해하도록 명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논의한 내용이라면, 누군가 정리하고 확인해야 한다. 서로 듣고 이해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정리했는데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듣는 사람이 문제다. 온전히 듣지 않아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다. 듣기는 듣되, 집중해서 듣지 않는다. 아는 내용이라면 더 그럴 수 있다. ‘다 아는데 뭐!’라는 생각은, 귀는 열어둘지 몰라도, 마음을 닫는다. 마음이 닫히면 귀를 열고 있어야 소용이 없다. 흘러 나간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자기 기준을 가지고 듣는다. 듣기는 하지만, 자기 기준으로 담을 것과 버릴 것을 가른다. 판단한다는 말이다. 우선은 온전히 포용하면서 듣고 후에 판단해도 되는데, 들으면서 판단한다. 온전히 듣지 못하는 이유다.


갈증이 나는데 누군가 물을 준다고 하자.

물을 받으러 나갈 때 모두가 같은 용기를 가지고 나갈까? 아니다. 각기 다른 용기를 가지고 나간다. 자기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컵을 준비할 것이고 누군가는 바가지를, 또 누군가는 양동이를 준비한다. 커다란 물통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있을 거다. 왜? 자기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갈증의 정도가 다르고, 당장만 해소하려는 사람과 비축해 두려는 사람이 다르다. 혼자인 사람과 나눠 마셔야 하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르다. 모든 것이 다르니, 준비하는 것도 다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 그릇의 크기만큼만 담을 수 있다. 나머지는 담지 못한다. 담지 못한 양만큼, 이해의 폭도 줄어든다. 때로는 물을 담지 않고 주변에 있는, 자기가 관심 가는 것을 담기도 한다. 담아야 할 것을 담지 않았으니, 필요에 따라 활용하지 못한다. 목이 말라 물을 받으러 갔는데 빵을 담아 오면 어떻겠는가? 목만 더 메거나, 잘못된 선택을 후회한다. 본래 목적을 잃고, 딴눈 판 것을 후회한다. 온전히 들어야 한다. 왜 듣는지 목적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제대로 듣고 올바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필요하다.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