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의 묘미는, 기다림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낚시를 해보진 않았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말이나 모습을 보면 그렇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 하는 낚시는 역동적으로 보이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하는 낚시는 정적으로 보인다. 낚싯대 하나를 거치대에 올려놓고 가만히 기다리는 모습이 그렇다. 오래전에, 낚시를 즐기시는 분한테 물어본 적이 있었다. “물고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리려면, 지루하지 않아요?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데요.” 가만히 있는 게 지루하지 않을지 물어본 거다. 한편으로는 시간 낭비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분은 낚시 장면을 떠올리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기도 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는데, 그 시간이 참 좋다고 하셨다. 고요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 좋다고 하셨다. 낚시할 때는, 핸드폰도 꺼서 텐트 안에 던져준다고 하셨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낚시를 통해 얻고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은 기다리는 동안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는데, 그 맛이 꿀맛이라고 하셨다. 그때였던 것 같다. 지루하고 시간 낭비로 보였던 낚시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말이다.
기다림은 지루하고 시간 낭비처럼 보인다.
아무런 가치가 없을 때는 그렇다. 스스로 가치를 담은 기다림은 어떨까? 전혀 그렇지 않다. 진정으로 낚시를 즐기는 분을 보고 깨달은 부분이다. 누군가에게는 지루한 시간 낭비로 보이지만, 낚시를 즐기는 분에게는, 그 어떤 시간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이다. 자기만의 가치를 담았기 때문이다. 어떤 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주교님께서 하셨던 말씀이라며 전해주셨는데, 깊은 울림이 있었다. 성체조배에 관한 정의다. 성체조배는, 감실(성체를 모셔둔 곳) 앞에서 고요하게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성당에는 성체조배실이 있는데, 그곳에서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누군가는 성경을 읽거나 필사하기도 한다.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대체로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성체조배를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앉아서 시간 때우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낚시를 모르는 사람이, 낚시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뭇 다르지 않다. 주교님께서는 성체조배를 이렇게 정의하셨다고 한다. “가장 성스러운 시간 낭비”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낭비’라는 표현에 ‘성스럽다’라는 가치를 더한 표현이다. 이보다 더 성체조배를 잘 표현한 문장이 있을까? 지금까지는 발견하지 못했다.
가치는, 시간 낭비도 성스럽게 변화시킨다.
그냥 앉아 있으면 시간 낭비가 되지만, 성체 앞에 앉아 있으면 성스러운 시간이 되는 거다. 성체의 존귀한 가치가, 그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을 성스러운 시간을 만든다. 낚시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이 낚시터에 자주 가는 것처럼, 성체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은 성체 앞에 자주 머문다. 사람은 그렇다. 자기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주로 생각하고 그곳에 머물려고 노력한다. 머물려고 노력할 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가치는 더욱 풍성해지고 견고해진다. 그 가치 안에서, 자기 삶도 풍성해지고 견고해진다. 나의 최우선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만들고, 나 또한 그 가치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든다. 내 삶의 가치를 좌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