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세상이다.
불확실한 세상이라는 말이다. 계획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고, 예상했지만 예상대로 되지 않는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틀어지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불확실한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오히려 더 좋은 상황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예상하지 못한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고, 당연히 어려울 것으로 여겼는데 뜻하지 않은 도움을 받기도 한다. 불확실성의 묘미를 아는 사람은, 이 상황을 일부러 즐기기도 한다. 여행이 그렇다. 보통, 여행을 간다고 하면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 벌어질 수 있는 만약의 상황까지 대비해서 철저하게 준비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즐기는 사람은,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무계획이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불확실성을, ‘우연’이라고 표현한다. 불확실성이라고 하는 막연하고 불안한 마음을, 기대와 설렘으로 바꾼다. 우연이 가져다주는 즐거움과 기회 그리고 배움을 기대한다. 이 마음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
믿음이다.
불확실성이라는 막연함과 불안한 마음이 아닌, 우연이라는 기대와 설렘으로 바꾸는 마음은 믿음이다. 예측하기 어렵지만, 좋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믿음. 좋은 일이 아닐지라도 즐거움과 추억이 될 거라는 믿음. 누구를 만날지 모르지만, 좋은 인연이 될 것이라는 믿음. 모든 순간이 배움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들이 불확실성을 우연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사람은, 대체로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예측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한다.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하다고 다 통제가 가능할까? 아니다. 통제 불가능한 것이 더 많다. 예측만 가능할 뿐,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조금은 덜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예측해도 혹은 그렇지 못해도, 어차피 통제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면 될까? 통제 안 되는 마음을 부여잡고 안절부절못한 채로 있어야 할까? 아니다. 기대와 설렘으로 우연을 맞이하는 것처럼, 그렇게 마주해야 한다. 벌어질 상황들이 나에게 도움이 되고 나에게 필요한 상황과 사람이라고 믿고 맞이해야 한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걱정해서 걱정이 사라지면 걱정할 일이 없겠네!” 걱정해 봐야 소용없다는 말이다. 불안해하고 통제되지 않은 상황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 걱정 아니겠는가? 걱정해도 소용없다. 마음만 불편하고 불안할 뿐이다. 걱정이라는 파도에 휩쓸려 갈 것인가? 아니면, 우연을 기대하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물결의 흐름을 탈 것인가? 어떤 몫이 더 좋을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우연의 힘을 믿자.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든, 나에게 필요한 것임을 믿자. 믿고 흐름에 따라 맡길 때, 진정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믿어야 보이고 느끼고 깨닫는다. 믿음의 힘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