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by 청리성 김작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볼 때가 있다.

다 가진 것 같은 사람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 모습이 그렇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해외여행을 국내 여행 다니듯 다닌다.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면서 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행복한 표정과 표현보다는 불평이 더 많다. 더 가지지 못하고 더 여유롭지 못한 상황을 불평한다. 가만히 보면, 원하는 ‘더’를 얻어도 불평할 것으로 보인다. ‘더’를 얻으면, ‘더, 더’를 원할 듯 보인다. 목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것처럼,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마시지만, 갈증만 더 강해질 뿐이다. 반대의 모습도 있다.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도 표정이 밝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말에도 생기가 묻어나고 행복하다는 표현과 감사하다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산다. 부럽기도 하면서, 정말 그런 마음인지 살짝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나라면 그렇게까진 하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은 더 가지지 못한 것에 불평하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지금 누리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 무엇을 의미할까?


삶의 중요한 의미를 알려준다.

환경이 아닌, 해석의 차이로 갈린다는 사실이다. 좋은 환경에 있더라도 해석을 어두운 부분으로 한다면, 좋은 환경을 온전히 누리지 못한다. 있어도 더 많이 더 좋은 것을 갈구한다.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지 않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물 잔에 절반의 물이 담긴 모습을 보고,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 집중한다. 채워지지 않은 부분에 집중하니, 채워진 부분을 보지 못한다. 채워진 부분이, 해석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 없는 것밖에 보이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밝은 점에 초점을 맞춰서 해석하면 만족과 감사한 마음을 느끼게 된다. 얼마나 있고 어떻게 좋은지는 상관이 없다. 있는 것 그 자체로, 된 거다. 물 잔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채워진 반에 집중한다. 비워진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 손에 있지 않은 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중하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을까?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마음은 상식적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새벽 늦은 시간, 아이들이 떠들며 논다.

어떤 마음이 올라오는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잠을 잘 수 없음에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는가? 처음에는, 이 마음이 올라올 수 있다. 현실의 걱정을 무시할 순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응은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아이들에게 한 소리 할 거다. “빨리 안 자!”라며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어떤 마음으로 돌릴 수 있을까? ‘시끄러워서 잠을 제대로 못 자긴 해도, 사이좋게 지내니 다행이네.’라는 마음으로 돌릴 수 있다. 좋은 추억을 쌓는 중이라며, 흐뭇해할 수도 있다. 같은 현상이지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행복과 감사한 마음은, 외부의 환경이 아닌 그 환경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시선과 해석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이, 내 마음 상태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