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손가락질하면, 세 손가락은 나를 가리킨다는 말이 있다.
처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손가락질하는 모양을 했더니 정말 그랬다. 새끼와 약지 그리고 중지가 숨은 듯 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제야 말뜻을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이 말은, 누군가를 욕하고 험담하면, 자기 스스로에게는 세 배나 더 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타인을 비방하지 말라는 간접 경고다. 좋은 방향으로 말하면,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면 자기를 더 존중하고 배려하게 된다는 말도 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부정적 감정을 내기도 하고 긍정적 감정을 내기도 한다. 각각의 마음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된다.
타인을 비방할 때 마음이 어떤가?
속 시원하고 후련한가? 일시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떤가? 마음이 찝찝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화를 내고 돌아서서 웃는 사람이 있을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화를 내면 화가 계속 마음에서 돌고 돈다. 아무렇지 않던 것도 아무런 게 되고, 화는 점점 퍼져간다. 존중과 배려도 마찬가지다. 자리를 양보하거나 무거운 짐을 든 사람을 도와준 경험이 있다면, 안다. 앉았다가 일어서는 수고로움을 했더라도 힘을 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마음은 가볍다. 나눔을 많이 하는 사람이나 자원봉사를 많이 하는 사람을 봐도 그렇다. 심지어 자기의 시간은 물론 비용까지 직접 들여가며 하는 사람도 있는데, 표정이 밝다. 인위적인 표정이 아니다. 찻잔에 차가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것처럼, 마음에 가득 찬 행복이 겉으로 흘러넘치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모습이 더 좋아 보이는가?
물으나 마나다. 화를 내거나 비방하는 모습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 그리고 행복에 가득 찬 모습을 좋아하지 않을까? 스스로 느끼는 감정도 그렇지만, 타인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모습도 그렇다. 부정적이고 불편한 모습보다는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대해주기를 바란다. 내가 원하는 것처럼 타인도 나에게 그렇게 원한다. 마음으로 간직하고 겉으로 드러내야 할 태도다. 스스로 이 태도를 갖추려고 노력할 때, 좋은 몫을 얻는 것도 본인이다.
어제 기도회 미사에서 신부님 안수가 있었다.
안수 전, 신부님께서 안수받을 때 어떤 기도를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셨다. 꼭 필요한 말씀이었다.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간절하게 청하라고 하셨다. 청하는 방법도 말씀해 주셨다. 이 말씀이 핵심이다. 재물을 청한다고 하자. 내가 재물을 가질 수 있도록 청하지 말라고 하셨다.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재물을 청하라고 하셨다. 청하는 목적 자체가 내가 받아 누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용하기 위함이다. 어떤 역량을 원한다면, 그 역량을 받아 내가 누리고 혜택받기 위함이 아니다. 받은 역량으로 타인 혹은 사회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청해야 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 모습을 내가 하겠다고 청해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씀이다. 지금까지 원하고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이렇게 청해보면 어떨지 싶다. 내가 소유하기 위함이 아니라, 나누고 베풀기 위함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