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아야 할, 나의 기준은 무엇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각자에게는, 기준이 있다.

기준의 의미가 다르겠지만, 허용하는 범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정도까지는….’이라는, 허용 한계점이 기준이라고 볼 수 있다. 저녁 먹는 시간이라면, 몇 시까지는 먹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다. 저녁 7시 이후에는 먹지 않겠다는 기준을 정했다면, 배가 고프더라도 7시가 넘으면 먹지 않는다. 먹지 않으면 기준을 지키는 거다. 항상 기준을 지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여러 가지 변수(?)가 발생한다. 스스로 인정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는 거다. 손님이 왔다거나 모임이 생기는 등, 외적인 이유가 생긴다. 좋은 일이 있다거나 혹은 안 좋은 일이 있는 등, 내적인 이유가 생긴다.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굳은 마음이, 서서히 녹거나 순식간에 무너져 버린다.


여기서 핵심은, 기준에 관한 기준이다.

기준을 지키는 상황과 지킬 수 없는 상황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거다.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없다. 주관적인 생각과 느낌이 곧 기준이 된다. 어떤 때는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켜낸다. 기준의 고삐를 끝까지 놓지 않는다.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낄 정도로, 단단하게 부여잡는다. 어떤 때는 그리 어렵지 않은 상황인데도, 쉽게 무너진다.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너진다.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뭐에 홀린 것처럼, 그때는 정말 못 참았는데 금방 ‘왜 그랬지?’라며 스스로 자책한다. 축구에서 골키퍼가 어려운 슛을 여러 차례 방어했는데, 자살골로 점수를 내준 상황의 느낌이랄까? 어이없고 허무하다.


저녁 식사만으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늦은 시각에 먹는 것을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녁 식사를 예로 들었지만, 일상에 많은 부분이 그렇다. 기준이라고 하지만, 정작 기준이 아닐 때가 많다. 저녁 식사처럼 자기 혼자 지키는 기준이라면 그나마 가볍게 넘어가겠지만, 타인과의 관계라면 다르다. ‘아전인수’라는 사자성어처럼, 자기 좋을 데로 기준을 정하거나 바꿀 수 있다. 힘의 논리로, 힘이 더 센 사람의 기준으로 바꿀 수 있다. 이유는 있다. 그 이유가 누구도 인정하지 못하는 이유라는 것이 문제다. 한참 설명하지만, 앞에서는 고개를 끄덕여도, 누구도 동의하지 못한다. 정작 본인은,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다 이해했다고 여기지만 말이다.


모든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는 건 어렵다.

하루의 일과만 봐도 그렇다. 정해진 일정대로 완전하게 진행된 날이 있었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소한 일이라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긴다. 누군가가 잠시 이야기 나누자고 해서, 계획한 일을 미뤄야 할 때도 있다. 계획한 일을 하기 위해 이야기를 미룰 수도 있겠지만, 시각이 촉박하지 않다면 대체로 받아들인다. 계획한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일 때도 있다. 변화무쌍한 삶에서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는 건 어렵다. 혼자 살아도 마찬가지다. 늦잠을 잔다거나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계획한 일정을 소화하기 어렵다. 기준을 지키기 어렵다는 말이다. 상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는 기준 말고, 정말 변하지 않을 기준을 정하고 지켜야 한다.


우리는 이런 것을, 삶의 가치관 혹은 철학이라 표현한다.

다른 모든 것은 바뀌어도 절대 바뀌지 않아야 할 그것. 그것이 곧 자기 삶의 기준이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큼은 지키겠다는 그것. 그것을 지켜야 한다. ‘모건 하우절’의 <불변의 법칙>에서도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수백 년 전에 유의미했듯 수백 년 후에도 유의미한 것들, 바로 그런 것이 현재를 위한 지혜이자 미래를 엿보는 직관이다.” 나 자신에게 중요한,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을 찾고 지킬 때, 자기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