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는, 상대적이다.
나라마다 화폐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그렇고, 금값이 변동하는 것도 그렇다. 쟁점이 되는 주식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하루 사이, 몇만 원이 오르기도 하고 내리기도 한다. 어제 주유하러 갔을 때도, 상대적 가치를 느꼈다.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1,600원대였던 휘발유가 1,800원대가 되었다. 상황에 따라 가치는 내려가기도 하고 올라가기도 한다. 가치가 상대적인 것은, 희소성과 중요성 그리고 선호도 등에 따라 갈린다. 상대적 우위와 열세 등 힘의 논리와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상대적 가치는 단편적이지 않다. 역으로 거슬러 가면 설명할 수 있지만,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예측하기 어려운 것도 많다. 결과론이라는 말이다. 결과가 나오고 나서 이러니저러니 분석을 쏟아놓는 것을 보면,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음을 느낀다. 몰랐으면서 마치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수리남>이라는 시리즈가 있다.
제목은 나라 이름인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시간이 좀 지나서 세부적인 내용이 명확하게 떠오르진 않지만, 홍어의 가치가 변하는 것은 명확하다. 이 나라에서는 홍어가 많이 잡히는데, 전부 내다 버렸다. 먹을 수 없는 생선으로 간주한 거다. 이 사실을 안 한국 사람은 어땠을까? 원가가 들지 않은 사업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홍어를 잘 먹기 때문이다. 쓰레기로 버리는 것을 가져간다는데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 오히려 쓰레기를 치워주는 것에 감사한다. 홍어를 한국에 판다는 소식을 들은 이 나라 사람의 반응이 어땠을까?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쓰레기 취급하면서 내줬던 홍어를 가지고 흥정하기 시작한다. 쓰레기로 여겼던 가치가 돈벌이 수단의 가치로 바뀐 거다.
음식의 가치에 관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돼지껍데기’다. 우리나라에서는 별미로 맛나게 먹는 돼지 부위다. 이뿐이 아니다. 돼지고기 중에서 먹지 않는 부위는 없지 않을까? 돼지는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우연히 방송을 봤는데, 외국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삼겹살을 주메뉴로 파는데, 서브 메뉴로 돼지껍데기를 내놓는 모습이 나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먹지 않는 부위라고 했다. 외국이라 그럴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는데, 못 먹는 것이 아니었다. 안 먹은 거였다. 먹어보고 맛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 부위만 따로 떼서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잘 먹지 않은 음식을 즐겨 먹는 나라다. 음식 자체로 먹느냐 안 먹느냐가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다.
가치는 언제나 달라진다.
나라에 따라 달라지고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의 변신은 무죄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아야 할 가치가 있다. 변하면 안 되는 가치가 있다. 사람이다. 필요에 따라 사람의 가치도 다르게 보고 평가하는 세상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니, 가치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도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자체로 존귀하다. 존중받아야 하고, 소중하게 여겨져야 한다. 존귀하게 여길 때, 나도 존귀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