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심란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선택인가?

by 청리성 김작가

심란할 때가 있다.

마음이 어수선한 거다. 마음이 어수선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생각들이 엉켜서, 불안함과 걱정이 가득할 때를 말한다. 뚜렷한 이유가 있을 때도 있지만, 막연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유가 있을 때는 원인이라도 아니, 어떻게 해야 할지가 조금은 보인다. 그것을 하면 되는데, 하기 싫은 마음에 더 어수선해지기도 한다. 누군가가 그랬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해야 할 것을 하기 싫기 때문이라고. 미루는 거다. 해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행동해야 처리가 되는데, 처리하지 않으니 마음의 짐만 무거워진다.


나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려했는데 조용히 넘어갈 때도 있으니, 알 수 없다. 사람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상황 전개가 달라진다. 예상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은 참 난감하다.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데, 별거가 될 때다. 여기서 심란한 이유는 두 가지다. 억울한 마음과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이다. 전자는 그냥 털면 되지만, 후자는 그 여파가 좀 길어질 때도 있다. ‘왜, 생각하지 못한 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맴돈다.


심란한 상황은 다양하다.

스스로 만들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벌어지기도 한다. 내가 하면 해결되는 것도 있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다양한 일들로 마음이 어수선하고 불안함과 걱정, 심하면 두려움까지 번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상황은 다양하게 벌어지지만,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심란한 상황에 머물지 그렇지 않을지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누군가가 무언가를 준다고 하자. 그것을 받을지 말지는 내가 선택하는 거다. 받았다면 수용을 선택한 것이고, 받지 않는다면 거절을 선택하는 거다.


그 무언가가 쓰레기라면 어떨까?

쓰레기를 받아와서, 왜 쓰레기를 줬냐고 투덜댄다면 어떨까? “그럼, 왜 받았어? 안 받으면 됐잖아?” 투덜대는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쓰레기라는 보이는 것이라면, 쉽게 거절할 수 있기는 하다. 마음으로 던지는 쓰레기는 잘 보이지 않아서, 그것이 쓰레기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있다. 뒤돌아서서, ‘어? 뭐지?’라는 생각이 불현듯 다가올 때도 있다. 가끔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곱씹어보니 매우 기분 나쁜 상황 말이다. 교묘하게 넘겨준 쓰레기를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받아안고 온 거다.


선택할 권리는 나에게 있다.

타인이 주든 스스로 만들든, 심란한 상태로 머물지 평온한 상태로 머물지는,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 평온한 상태에 머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다. 벌어지지 않을 상황을 스스로 상상한다. 불안하고 암울한 상황으로 스스로 끌고 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면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늘어지는 생각을 끊으면 된다. 생각의 방향을 돌리면 된다. 벌어지지 않은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고, 좋은 상황으로 몰고 가면 된다. 아니면, 상관없는 다른 상황에 집중하면 된다. 누구도 선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하는 거다. 스스로 진흙탕에 들어가면서, 왜 이렇게 더러워졌냐고 말한다면, 글쎄다. 누구의 선택이고 누구의 잘못인가? 쉽진 않겠지만, 이것도 노력이고 훈련이다. 실행해야 할 수 있고, 익숙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