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만남
지하철 입구를 나가기 전, 매일의 루틴으로 샌드위치 가게에 들어간다. 적은 비용으로 아침을 때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커피와 먹으면 그 맛이 배가 된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곧 먹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살짝 들떴다.
“샌드위치 하나 주세요.”
“네. 그런데, 오늘 카드기가 고장 나서 현금밖에 안 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아니면 입금해주셔도 되고요.”
“아, 그래요? 잠시만요.”
현금은 가끔 오뎅 사 먹을 때만 사용하지,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지갑을 열어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히 오천 원짜리 한 장이 남아있었다.
“여기요.”
“네~ 고맙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해요.”
“아네요. 수고하세요.”
잔돈을 지갑에 다시 넣기 귀찮아 코드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집에 갈 때, 오뎅이나 사 먹어야겠다.’
지하철이 도착하고 인파가 한 번 빠져나간 뒤라 그런지, 출구가 보이는 계단이 한산했다. 계단의 중간쯤 좀 평편한 곳 한쪽에 노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몸을 쭈그리고 앉아있었다. 그의 앞에는 바구니가 놓여 있었는데, 동전 몇 개가 전부였다. 가끔 보는 광경이긴 한데, 오늘따라 유독 마음에 걸렸다. 그 앞을 지나쳐서 두 계단 정도 올랐을 때, 코트 주머니에 꽂아놨던 천 원짜리 3장이 손에 잡혔다.
‘그래! 오늘은 오뎅 대신 좋은 일 한 번 하자!’
올라가던 계단을 뒤로하고 내려와, 바구니에 천 원짜리가 펼쳐지지 않게 몇 번을 접었다. 지폐가 손에서 떠나는 순간, 그 노인이 내 손목을 덥석 잡았다. 순간 놀랐지만, 팔을 빼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릎을 굽혀 그 노인의 시선과 마주했다.
“젊은이 고마워. 내가 정말 고마워서 선물을 주고 싶은데….”
“네? 선물이요? 선물 사실 돈 있으시면, 국밥이나 한 그릇 든든하게 잡수세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노인은 내 팔을 끌어당겼다. 생각보다 센 힘에 당황하며, 다시 쭈그리고 앉게 되었다.
“선물이 꼭 돈으로만 산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인생의 지혜도 선물이 될 수 있지.”
“인생의 지혜요?”
‘아니, 그렇게 지혜로우신 분이 왜 여기에 이러고 계신담’
“싫은가? 받기 싫어? 거지가 주는 선물이라 싫은 거야?”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네! 주세요. 사실 제가 요즘 지혜가 좀 필요하긴 합니다. 요즘 하도 깨져서 말이죠. 아이고. 별소릴 다하네.”
“허허, 그래 네 알려줌세. 내일부터 출근할 때,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잘 살펴봐.”
“네? 지하철에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라고요? 그게 지혜예요?”
“허허, 이 젊은이 성격이 급하네. 말을 끝까지 들어봐.”
“아…. 네”
뻘쭘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람들을 둘러보다 보면, 유독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의 모습을 잘 살펴봐. 그러면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거야. 그게 바로, 그날 일어날 문제에 대한 지혜를 줄 거야.”
“예?”
“믿기지 않겠지만, 한 번 해봐. 속는 셈 치고.”
‘속는 셈 치고? 셈 치고 가 아니라 속은 거지. 괜히 시간만 낭비했네. 쓸데없이 오지랖을 떨어서리.’
“네!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추우니, 얼른 들어가세요.”
“그래, 고마워 젊은 친구. 꼭 해봐!”
나는 뛰어오르듯 계단을 올랐다. 입구에 도착해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 뒤를 살짝 돌아봤다.
“어?”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노인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가셨나? 아닌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빨리 갈 수 없는데….’
마치 꿈을 꾼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고도 찝찝한 마음으로, 생각을 곱씹어봤지만 이해할 수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무실로 들어섰다.
“과장님!”
“어? 어.”
사무실 입구에서 나를 맞이한 건, 이 대리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세요?”
“아니야. 희한한 일이 좀 있어서. 아침 먹었어?”
“아니요. 전 원래 아침 잘 안 먹어요. 왜요?”
“어, 샌드위치 샀는데 갑자기 입맛이 없어져서.”
“그래요? 그럼 주세요. 안 그래도 좀 출출했는데,”
“자!”
그녀는 샌드위치를 받아 들고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고마워 자기야~”
“아이, 그러지 말라니까.”
입 모양은 또렷하게, 하지만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게 내뱉었다.
그녀는 골탕 먹은 내 모습이 뭐가 그리 우스운지 혼자 낄낄대며 자리로 돌아갔다.
다행히 아직 출근한 직원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커피를 내리러 휴게실로 갔다.
컵을 올려놓고, 버튼을 눌렀다.
“찡~~~”
원두 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커피가 나올 땐, 그 소리를 죽였다.
‘뭐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그렇게 빨리 사라질 리가 없는데….’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믿기지 않았다. 지하철에서 졸다가 막 깬 느낌처럼, 잠깐 있었던 일이 몽롱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