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우연한 만남

4. 고민

by 청리성 김작가

<점심시간>


‘타닥 타닥 타타닥’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며, 견적 금액을 뽑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과장님?”

“어, 잠깐만”

계산 도중 끊기면 다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기에, 계산을 마저 끝내고 뒤를 돌아봤다.

“어! 박주임. 왜?”

“점심 안 드세요?”

“어? 벌써 점심시간인가?”

오랜만이다. 이런 느낌. 점심시간인지도 모르게 일에 집중한 게 얼마만 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먹어야지. 근데…. 아! 그래 가자, 내가 밥 살게!”

“와~ 정말요? 이 대리님! 과장님이 밥 사주신 데요, 같이 가요!”

“이 대리가 시켰구나?”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면서, 조용히 물어봤다.

“에? 아, 아닌데요?”

“근, 근데 왜 더 더듬으세요? 하하하! 뭐 상관있나? 가자 밥 먹으러.”


<식당>


“뭐, 먹을래?”

“자기는 나랑 쟁반짜장 먹자! 2인부터 주문 가능하니까!”

뜨끔한 마음으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녀는 박 주임한테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도 아슬아슬하게 놀려대는 탓에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그래? 그럼 쟁반짜장으로 3인분 시키자! 여기요! 저희 쟁반짜장 3인분 주세요!”

주문을 마치고 따뜻한 차를 컵에 채웠다. 앞에 있는 두 친구의 컵에도 채워주고, 열기를 식히면서 조심스레 차 한 모금을 목으로 넘겼다.

“아~ 좋다! 난, 따뜻한 차가 참 좋더라.”

“으이그! 아저씨 같으시다니까?”

그녀는 모가 못마땅한지, 따뜻한 차가 좋다는 내 말에 시비를 걸었다.

“따뜻한 차 좋아하면 아저씬가? 안 그래? 박 주임?”

“에? 아, 네 그런 건 아닌데, 추임새 넣으시는 모습은 아저씨 같긴 해요?”

둘은 모가 그리 좋은지 마주 보며 낄낄거렸다. 밥 사 주는 사람한테 이러기냐며 한마디 하려다, 아저씨에 더해 좀생이까지 될 것 같아, 그 말은 차 한 모금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버렸다.


둘은 어제 본 드라마 얘기에 빠져서 내가 끼어들 틈이 없어 보였다. 따뜻한 찻잔을 손난로 삼아 만지작거리다, 입김을 불고 한 모금 더하고 내려놓는데, 문득 오전에 일어났던 일이 떠올랐다. 대화를 나눴던 내용을 다시 곱씹고 있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삐지셨어요?” 말투는 조심스러웠지만, 표정은 억지로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삐지긴 뭘, 생각할 게 좀 있어서. 그리고 둘이 드라마 얘기하는데 나는 모르는 내용이라 끼기도 좀 그렇고.”

“무슨 생각이요? 과장님은 점심시간에도 일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박 주임 질문에 나조차도 당황스러웠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출근하는데 희한한 일이 있어서.”

“뭔데요?”

“그게….”

“주문하신 쟁반짜장 3인분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말을 꺼내려는 찰나, 주문한 쟁반짜장이 나왔다.

“일단 먹자! 먹고, 이따 차 한잔하면서 얘기해줄게”

박 주임이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기대감을 드러냈다.

“오~ 그러시니까 더 궁금해지는데요?”

“자기야 일단 우리 먹자. 배고프다.”

그녀는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은 것인지, 고개를 들이민 박 주임을 경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쟁반짜장에 집중하도록 말을 돌렸다. 우리는 그녀의 말에 따라 일단 먹기 시작했다. 박 주임은 먹으면서도 계속 그녀에게 말을 걸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대충 답을 하는 느낌이었다. 밥 먹을 때 말을 잘하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본능적으로 들었다. 짜장면을 빨아들이는 내 입이 점점 옆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살짝 올려다본 그녀는, 뾰로통하게 면발을 몇 가닥씩 들어 올려서 입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에 물었던 짜장면을 분출할 뻔했다. 그녀는 그런 모습이 참 잘 어울리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 먹었습니다!”

박 주임의 표정에서 정말 잘 먹었다는 것이 느껴졌다.

“덕분에 나도 잘 먹었습니다! 하하하! 자, 그럼 차 마시러 어디로 갈까?”

“저 밑으로 가요.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녀는 덤덤한 표정과 말투로 제안을 했다.

“아니야! 이 대리. 커피도 내가 사야지. 가자.”

“어머! 저는 얻어만 먹는 사람이 되네요?”

“박 주임은 여기서 막내니까 얻어먹어도 괜찮아!”

“예~ 그럼, 전 다음에 한 번 사겠습니다.”


밥을 서둘러서 먹고 나왔는데도, 커피숍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와~ 자리가 있으려나?”

“어? 저기 끝에 있네요. 제가 얼른 가서 자리 맡을게요! 저는 따뜻한 라떼요~”

“저 싸가지 없는 거 봐라.”

“아이, 또 왜 그래? 자리 맡으러 가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지 남자 친구한테 시키는 것처럼 하는 거 봐. 자기가 그렇게 다 받아주니까 저러는 거 아니야!”

“왜? 아까 박 주임이 나한테 관심 있게 물어봐서 질투하는 거지?”

“질투 같은 소리 하시네! 난 그냥 저 행동이 마음에 안 드는 것뿐이야!”

“아까는 낄낄거리면서 잘 떠들기만 하더니만. 참 여자들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뭐 마실래?”

“뭐, 그걸 맨날 물어봐야 아니? 나 자리에 가 있을게.”

그녀는 일부러 그런 것처럼, 내 어깨를 살짝 치고 갔다. 뒷모습에서 ‘나 뿔났소!’ 하는 것이 느껴졌다. 주문하고 진동벨을 받았다. 자리로 가려다, 그녀가 박 주임한테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멈춰 섰다. 눈치로 봐선, 아까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내가 잠시 비켜줘야 할 시간 같아, 근처에서 진동벨이 울리길 기다렸다. 진동벨이 울려 카운터로 갔더니, 주문한 음료가 쟁반에 가지런히 담겨있었다. 진동벨을 건네주고 쟁반을 들어 자리로 향했다. 자리를 확인하고 걸어가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둘이서 또다시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하여튼, 여자들은 참 모르겠단 말이야. 아니지, 오랫동안 토라져 있는 것보단 낫지. 그래, 쪼잔한 남자들보다 낫다!’


“자! 주문하신 라떼랑 찐~한 아메리카노 왔습니다!”

“고맙습니다요~”

그녀는 두 손으로 조심스레 잔을 옮겨가며 말끝을 흔들었다.

“과장님. 고맙습니다. 잘 마실게요~”

박 주임은 잔을 바로 입으로 가지고 갔다. 표면에 있는 하트 모양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한 모금하고 잔을 내려놓았다.

“자! 그럼, 그렇게 뜸을 오래 들이셨던, 아침 사건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그녀는 마치 변호인이 증인에게 질문하듯 손을 펴서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취조받는 기분인데? 하하하! 농담이고. 실은, 아침에 지하철에서 올라오다 샌드위치 가게에 들렀어. 근데 오늘 카드기가 고장 났다는 거야. 그래서 오천 원짜리 지폐를 내고 거스름돈을 받았는데 지갑에 다시 넣기 귀찮기도 하고 이따 퇴근할 때 오뎅이나 사 먹으려고 코드 주머니에 거스름돈을 넣었어. 그렇게 계단을 올라오는데, 어떤 노인이 앉아있는 거야. 전에는 그런 느낌이 별로 안 들었는데, 오늘따라 유독 신경이 쓰이더라고. 그래서 그냥 지나치다가 주머니에 천 원짜리 몇 장 있는 거, 바구니에 넣었어. 근데, 갑자기 ‘턱’하고 내 손목을 잡는 거야!”

“헐. 놀라셨겠는데요?”

“그럼, 놀랐지! 그래서 살짝 고개를 드는데, 손목을 잡은 손에 점점 힘을 주더라고 그래서 무릎을 굽혀서 앉았지.”

“어우~ 뭐야~”

그녀는 무슨 그런 일이 있느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손사래를 쳤다.


“노인이 나를 쳐다보면서 선물을 주겠다는 거야.”

“그게 무슨 신나라 까먹는 소리야! 에요!”

그녀는 순간적으로 뛰어나온 말에 아차 싶었는지 바로 끝말을 수정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럴 돈 있으시면 밥이나 사드시라고 했는데, 선물은 꼭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나 뭐래나, 암튼, 빨리 자리를 피하고 싶어서 받겠다고 했지.”

“그래서, 뭘 받았어요? 뭐, 엄청난 거예요?”

박 주임은 아까처럼 고개를 내밀면서,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어! 엄청난 거야.”

“뭔데요?”

“인생의 지혜!”

“에? 인생의 지혜요? 그게 무슨….”

“황당하지? 내일부터 출근길에 사람들을 잘 관찰하래. 그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그 사람을 잘 관찰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있을 거래. 그 안에 그날 벌어질 문제에 대한 지혜가 있다는 거야!”

“스토킹에 지혜가 있다고요? 그러다 신고 안 당하면 다행이겠네요.”

“에이~ 스토킹까지는 아니지. 그냥 관찰하는 건데.”

“잘 모르시는 말씀이세요. 지하철에서 눈이 두 번만 마주쳐도 얼마나 기분 나쁜데요. 계속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겠어요?”

“사실 나도 과장님이 다른 사람, 그렇게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거 좀 별로네요.”


그녀는 과장님이라는 호칭만 넣었지, 남자 친구한테 털어놓는 여자의 속마음이라는 듯 속삭이듯 말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그 마음이 확 느껴졌다. 자기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인 것이다. 남자고 여자 고를 떠나서.

“아, 뭐, 잘 모르겠어! 내가 꼭 그렇게 하겠다는 게 아니라, 그냥 그랬다고!”

“전 또 뭐라고요. 그냥 좋은 일 하셨다고 생각하시고 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을 그렇게 쳐다보는 건 좀 아닌 거 같아요.”

박 주임은 기분 나쁜 경험이 떠올랐는지, 말을 마치고, 라떼 한 모금을 마시고 몸을 살짝 흔들었다. 흔들었다기보다 떨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컵 모양대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에 초점이 없어 보였다.


“흠흠. 내가 괜한 얘기 했나 보네. 여성분들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네. 기분 나쁠 수 있겠어! 알았어! 안 그럴 테니, 다운된 기분 좀 올립시다! 에?”

남자의 생각과 여자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냥 별일 다 있네, 하고 넘길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여자들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았다. 그것보다 노인이 갑자기 사라진 게 희한한 일이라 얘기하려 했는데, 그 얘기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 같아 그냥 접어뒀다.

“야~ 여기 커피 진하고 맛나네. 이 대리가 자주 오는 곳인가 봐? 나도 자주 와야겠는데?”

“그쵸? 여기 괜찮죠? 나중에 라떼도 드셔 보세요. 맛나요.”

“과장님. 이제 들어가야 할 시간인데요?”

그녀는 남은 커피를 들이마시고,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 그래. 들어가자!”


몸은 커피숍을 떠나고 있지만, 괜히 얘기했다는 생각은 떠나질 않았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쟁반을 들고 두 사람 뒤를 따라갔다. 여러모로 찝찝한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일 좀 하겠다고 해서 한 건데, 왜 이리 찜찜한지….’

좋은 마음으로 무언가를 하면, 꼭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전혀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렇고. 내가 좋은 마음을 가지면,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나쁜 마음으로 살아야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별생각을 다 하면서 커피숍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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