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뎅
<다음 날, 아침>
‘빰빰빠라 빰빰빠라 빰빰빠라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상 알람이 울렸다. 알람을 듣자마자 눈이 떠졌고, 정신이 맑아 왔다. 보통 때 같았으면, 눈은 떠지더라도 정신은 잠 속에 파묻혀 있는 상태여야 했다. 가끔 이런 날이 있기는 하지만, 오늘은 유독 정신이 맑았다. 맑은 정신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기지개를 길게 켜고 이불을 박차며 일어났다. 매일 하던 대로, 아침의 루틴을 마치고 집을 나섰다. 기분 좋게 일어나서 그런지, 바깥공기가 유독 상쾌하게 느껴졌다. 총총걸음으로 지하철역을 내려가는데, 어제 아침의 일이 떠올랐다.
‘지하철 안에 있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보라고 했지? 아…. 해야 해, 말아야 해? 난감하네. 현정이 말 안 들었다가 걸리면 또 삐질 텐데…. 에이 모르겠다. 그냥 눈에 띄면 보고 아니면 말지 뭐.’
다른 사람 말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데, 유독 어제 그 노인의 말은 계속, 과속방지턱처럼 그냥 지나쳐지질 않았다. 잊을만하면 그 생각이 덜컹거려 머릿속을 흔들었다. 더 생각했다가는 오래간만에 느끼는 상쾌한 아침 기분을 망칠 것 같아, 되는대로 하기로 하고,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고, 카드와 손을 코트 주머니 속으로 바로 넣었다. 계단을 내려가는데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런 날은 왠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미끄러져 들어오는 열차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문이 열렸다. 내리는 사람이 없어, 바로 열차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평소보다 한산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을 둘러봤다. 평소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대부분 핸드폰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손의 움직임을 보니,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핸드폰을 가로로 눕히고 양손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저 학생은,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다. 집게손가락을 쉴 새 없이 쳐내듯이 위로 올리고 있는 저 여자는, SNS를 하고 있을 것이다. 같은 집게지만, 천천히 부드럽게 위로 올리고 있는 저 여자는, 쇼핑몰을 보고 있을 것이다. 움직임 없이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저 남자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있을 것이다. 평소에 살펴본 것은 아니지만, 조금만 보고 있어도 대략 느낌이 왔다. 손가락뿐만 아니라 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봐도 대략 알 것 같았다. 그 외에는 자는 사람이나 통화하는 사람밖에는 특이한 사람이 없었다.
‘아, 뭐야. 그래! 내가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출퇴근길엔, 대부분 핸드폰으로 뭘 하든지 자는 사람이 단데, 관찰할 게 뭐가 있겠어. 그걸 가지고 논쟁을 하고 고민했던 내가 병신이지. 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는데, 내가 좋아하는, 지상으로 열차가 올라가고 있었다. 사람들한테 돌렸던 시선을 강과 붉은 모습으로 가만히 떠 있는 태양으로 향했다.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참 듬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저 태양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듬직하고 항상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신뢰가 가는 사람의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열차 문이 열리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사람들은 빠르게 빠져나와 계단을 올랐다. 사람들과 되도록 부딪히며 올라가지 않도록, 반 보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첫 계단에 발을 올릴 때쯤, 사람들은 이미 중간 이상을 올라가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 있는 계단을 거의 올라오니, 바깥으로 빠져나가지 않은 오뎅 냄새가 번져왔다. 출출하기도 하고 따뜻한 국물이 땡기 던 참이었는데 잘 됐다는 생각으로 오뎅 가계로 향했다. 오뎅은 후불제라 일단 먹고 꼬치를 반납하면서 계산을 하는 시스템이다. 종이컵을 하나를 빼서 앞에 내려놓고, 국자로 국물을 떴다. 한 번에 많이 떠 놓으면 식는 데 오래 걸리기도 하고, 마시기가 불편하다. 한 번은 시간이 없어 급하게 먹다가, 입천장을 데기도 했다. 그래서 반만큼만 따르고, 여러 번 나눠 마신다. 자주 먹다 보니 이런 것도 요령이 생겼다.
내가 이 오뎅집을 선호하는 이유는, 게로 국물을 내기 때문이다. 멸치로만 국물을 내면, 생선 맛이 강하게 느껴져서 별로다. 진득하게 우려낸 게와 오뎅이 같이 어우러져야, 베이스 톤의 국물 맛이 난다. 난 그 맛이 좋다. 해장하고 싶을 때도 그래서 생각이 난다. 국물을 한 모금하고, 오뎅을 집어 올렸다. 흐물흐물해 보이는 건 식감이 좋지 않아, 적당히 익은 것 같은 놈을 골라 들었다. 재수 없으면, 날 거를 씹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흐물거리는 느낌보단 낫다. 이 집 만에 양념 장이 있는데, 그 장에 찍어 먹으면 얼큰 오뎅이 된다. 이것도 이 집만의 매력이다. 그래서 그런지 근처에 오뎅집이 2개 정도 있지만, 유독 이 집만 붐빈다. 나는 보통 2개 정도 먹으면 어느 정도 성에 찬다. 사람들이 반납하는 꼬치를 보면, 내가 먹는 양이 평균 정도 된다. 국물은 통상 3~4번 정도 떠먹는 것 같다. 국물이 너무 땡길 때는 마지막 컵에 가득 채워서 들고 이동하면서 홀짝거리면 마신다.
옆에 한 아저씨는 오뎅을 꽤 오래 불고 있었다. 오뎅을 식히는 것 같은데, 꽤 오래 그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오뎅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아저씨를 쳐다보게 됐다.
오뎅에 물기가 없어질 정도로 식히더니, 고개를 왼쪽으로 꺾으면서, 한입에 꾸역꾸역 집어넣는 신기를 보였다. 양 볼이 터질 것 같았지만, 아저씨는 미션을 완수한 사람 마냥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의 손은, 언제 떠 놨는지 모를 국물이 담긴 컵을 들려있었고, 국물을 홀짝홀짝 목으로 넘겼다. 그래도 양 볼은, 여전히 볼록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남은 오뎅을 마저 먹고, 두 번째 오뎅을 집어 들었다. 처음처럼 오뎅을 양념장에 찍고, 국물을 먼저 한 모금했다. 천천히 두 번째 오뎅을 반쯤 먹었을 때, 아줌마의 잔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국물 좀 그만 드셔, 오뎅 하나 먹으면서 국물을 도대체 몇 번을 떠먹어요?”
“아참! 거 되게 야박하시네! 국물은 어차피 공짜잖아요. 공짜 국물 좀 먹는데 뭘 그렇게 야박하게 그래요?”
“아니 이 사람 보시게! 공짜라니,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요? 이 물은? 그리고 국물 끓이는 이 불은? 국물에 빠져있는 이 게는요? 이게 다 돈이에요. 좀 적당히 하셨으면 제가 말을 안 하죠. 근데 좀 너무하셨잖아요!”
아저씨는 아줌마의 반격에 순간 움찔한 것 같았다. 주춤하나 싶더니, 오뎅을 하나 집어 올렸다. 집어 올린 오뎅을 아줌마에게 확인시켜주듯 한번 털더니, 이번에는 조금씩 야금야금, 한 입씩 베어 물었다. 오뎅 하나 더 먹을 테니 퉁치자는 제스처로 보였다. 그렇게 긴박했던(?) 전쟁은 종결이 되고, 다시 평온한 모습이 유지됐다. 남은 오뎅을 마저 먹고, 남은 국물을 들이켰다. 떠 논 지 오래돼서 그런지, 냉랭했다. 역시 미지근한 국물은 별로였다.
계산하고 천천히 계단을 한 계단씩 올라 출구로 향했다. 계단 중간쯤 왔을 때, 어제 보였던 그 노인은 자리에 없었다.
‘있었으면 좀 따지려 했더니, 없네?’
옆을 잠깐 돌아보고 계단을 올라가는데,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봤지? 오뎅!”
‘어?’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 출구로 올라가서 뒤를 돌아봤을 때 느꼈던 그 느낌이었다. 천천히 뒤로 돌았는데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뭐지? 환청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계단을 올랐다. 출구에 도착하고, 혹시나 해서, 뒤를 돌아봤지만 노인은 없었다.
‘진짜 뭐지? 이 기분 나쁜 느낌은? 근데 오뎅? 웬 오뎅? 오뎅 먹은 걸 봤다는 건가?’
어제보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졌다. 오랜만에 상쾌한 느낌으로 시작한 아침이, 계단을 오르면서 엉망이 되었다.
‘이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이런 느낌이 들면 어쩌지?’
매일 올라야 하는 이 계단이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지 않길 바라며,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