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보이지 않는 가치

2. 공짜

by 청리성 김작가

<사무실>


“네~ 차장님. 안녕하세요~ 보내드린 샘플은 잘 받으셨어요?”

박 주임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린다.

“아…. 그래요? 그럼 다시 수정해서 보내드릴게요. 메일로 수정사항 보내주시면 작업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박 주임은 볼을 최대한 부풀렸다가, 가득 차 있던 공기를 미세하게 내뿜더니, 디자인 담당인 홍 대리를 슬쩍 쳐다봤다.

“박 주임, 무슨 일 있어? 표정이 왜 그래?”

“네? 아, 네. 늘 있는 일이죠. 뭐. 디자인 수정 요청이 들어와서요.”

“어딘데?”

“보정이요.”

“보정? 어제 오후 늦게 샘플 보내지 않았어?”

“네, 보냈죠. 샘플 보고 또 고치고 싶은 게 있다네요.”

“샘플만 몇 번 보내지 않았나?”

“그랬죠. 이번에 진짜 괜찮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겠네요. 정말”

박 주임은 한숨을 내쉬더니, 홍 대리 자리로 가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다.


“또? 몇 번째니? 이번엔 얘기 잘 들은 거 맞아?”

“그럼요. 몇 번이나 확인했는데요…. 저도 미치겠어요”

“가뜩이나 일 밀려서 죽겠는데. 수정 내용은 언제 온다니?”

“곧 보내준다고 했으니, 이제 올 거 같아요. 오는 대로 확인해서 말씀드릴게요.”

“이번에도 바로 해줘야 하는 거야?”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아마 그래야 할 것 같긴 해요.”

“일단, 알았어. 작업하고 있을 테니까 오면 알려줘.”

“네….”


보정은 우리한테 큰 거래처다. 큰 프로젝트를 많이 의뢰하고 물량도 많아서, 작은 것 하나라도 신경 써서 처리하고 있다. 다른 담당자들이 의뢰하는 프로젝트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는데, 한 차장이 의뢰하는 건은 수월하게 진행된 기억이 없다. 우리 직원들 사이에서도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 같이 일하기 까다로운 타입이다. 그렇다고 성격이 나쁜 거나 이상한 건 아니다. 결정장애가 있는지, 끝나는가 싶다가 뒤집고 또 뒤집는다. 그래서 우리끼리는 ‘전’이라고 부른다. 시도 때도 없이 뒤집는다고 해서 ‘전 차장’이라고 부른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성이 전 씨인 줄 알고 착각한다.

“박 주임! 커피나 한잔하자?”

“네.”

복잡한 마음 좀 달래줄 겸, 상황 좀 알아볼 겸 해서 차 한잔 마시러 휴게실로 데리고 갔다.

박 주임이 커피 머신으로 향하는 걸 보고, 막아서서 의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럴 땐, 내가 커피를 내려주면서 이야기를 이끄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커피 버튼을 누르고 박 주임을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이번에도 전 차장 건이야?”

“네. 맞아요. 이번에 진짜 끝나는 줄 알았어요.”

마치 자신이 잘못했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내뱉었다.


“박 주임 잘못 아니니까, 너무 그렇게 있지 마! 그 사람 그러기로 유명하잖아.”

“그래도 제가 커뮤니케이션을 잘했으면 이렇게 여러 번 수정하지 않았을 텐데, 좀 속상하네요.”

“너무 자책하지 마!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 탓만 하는데, 박 주임은 그래도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거니까, 딱, 거기까지만!”

다 내려진 커피를 박 주임에게 건네주면서, 이야기했다.

“고맙습니다.”

박 주임은 커피를 받아 들면서 대답했다.

내 위로가 고마운 건지 커피가 고마운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내 컵을 올려놓고 다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박 주임을 보면서 물었다.


“이번엔 몇 번이나 수정했지?”

“처음 요청 와서 시안 3개 보내줬고, 그중에 한 개를 선택했어요. 웬일로 빨리 결정하나 싶었는데. 그걸로 하기로 했다가 몇 가지만 수정하자고 해서 했고. 보냈는데 모양을 좀 다르게 하자고 해서 했고. 모양을 바꿨더니 폰트를 고치자고 했고. 폰트를 고쳤더니 색상을 바꾸자고 했어요. 그렇게 해서 네 번째로 보내준 게 어제 샘플이었어요.”

“여전하구나! 전에도 그랬는데, 한 번에 생각하고 수정 의뢰를 주면 좋은데 하나씩 그렇게 바꾼다니까!”

“제 말이요. 처음부터 선택한 시안에서 모양하고 폰트 그리고 색상까지 생각하고 얘기해줬으면 얼마나 좋아요.”

박 주임은 자신의 심정을 알아줘서 고맙다는 듯 커피잔을 내려놓고, 중국집에서처럼 고개를 내밀며 맞장구를 쳤다. 순간, 어제 그녀의 표정이 떠올라 흠칫 놀라 나도 몰게 뒤로 주춤했다.

박 주임 좀 풀어진 것 같아,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럴까?’

전 차장 아니, 한 차장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 사람이 그렇게 여러 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지금까지는 그렇다 치고,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일을 진행하게 된다면 우리 직원들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되는 인원 변경으로 고생했던 걸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할만하면 나가고 할 만하면 나가니, 쳇바퀴를 도는 다람쥐보다 내가 나은 게 뭔지 헷갈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시절을 버티고 버티며 왔는데. 이런 거래처 사람 때문에 누군가가 나가게 된다면 이만저만한 타격이 아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어떻게 한다?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잘 넘길 수 있을까?’


마음은 한참 앞을 달리고 있지만, 머리는 도무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녀왔습니다!”

외근을 나갔던 그녀가 돌아왔다.

“과장님 무슨 일 있어요?”

그녀는 내 표정을 단번에 읽어내고 물었다. 그녀가 말하길, 내가 뭔가를 고민하고 있으면 티가 확 난다고 했다.

“어? 어. 아니야.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아니다. 이 대리 지금 시간 좀 되나?”

“시간이요? 뭐, 되죠?”

“그럼, 나랑 잠깐 얘기 좀 할까?”

나는 그녀에게 눈치를 보내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녀는 가방만 내려놓고 나를 따라왔다.

“아~ 공기 좋다! 날씨가 참 좋네!”

“뭔데? 왜 갑자기 날씨 타령이래?”

“아, 다른 건 아니고. 보정 일 때문에, 사고가 난 건 아닌데….”

“전 차장? 그 인간 또 그래?”

그녀는 내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보정이라는 말에, 이미 겪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총알같이 결론을 내놓았다. 보정이라는 한 마디에 이렇게 흥분하면서 빠른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긴 있는 것이다. 그 생각을 더 확실하게 그녀가 못을 박아줬다.

“응, 그러게. 박 주임 말로는 이번에는 좀 빠르게 결정을 했다는데, 벌써 샘플만 네 번째 보냈는데 또 수정사항이 왔나 봐.”

“으이그, 그 인간이 빠른 결정? 일단 정하고 그때부터 하나둘씩 생각나는 대로 이리저리 뒤집는 거지. 한두 번이야?”

“그렇지. 뻔히 알면서도 매번 그러네.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면서….”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이번에는 좀 얘기해야 하는 거 아니야? 이렇게 계속 어떻게 일을 해? 횟수나 물량이 적은 곳도 아니고. 그러다 애들 또 나가지.”

“그래서 고민하고 있던 거야. 이러다가 또 하나둘씩 나가면 다시 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그것도 싫고. 이렇게 반복되는 잘못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싫고.”

“우리를 그냥 알로 보는 거지 뭐. 이래라 하면 이러고 저래라 하면 저래야 하는, 단순 하청 업체 취급하는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런데, 왜 그 사람만 그러는지 몰라, 진짜!”

“그러게, 회사 문화가 그런 것도 아니고, 왜 그럴까?”

“뭘 왜 그래? 내가 얘기했잖아. 알로 봐서 그렇다고. 지 맘대로 해도 되는 줄 아는 거지. 사실 실제로, 돈만 안 나갔지. 그것도 다 돈 아니야? 작업하는 시간에, 샘플 퀵 보내는 비용에,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한두 푼이 아니지 뭐. 그건 뭐 공짠 줄 아나…”


“공짜?”

공짜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내 기억은 테이프를 뒤로 감는 것처럼 빠르게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오뎅 가계 앞에 멈춰 섰다. 국물을 많이 먹는다는 아저씨에게 한 마디 던진 아줌마. 그 소리에 반격했다가 꼬리를 내리고 오뎅 하나를 더 집는 아저씨. 그렇게 당당한 아저씨를 무릎 꿇긴 건, ‘공짜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당연히 공짜라고 생각했던 것을, 제대로 인지시켜준 것이었다. 만일 아줌마가 아저씨에게 그렇게 인지시켜주지 않았다면, 아저씨는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 국물은 공짜라고 생각했으니까. 어쩌면 한 차장도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얘기해주지 않고 계속 우리끼리만 방법을 찾아봤자,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한 차장을 만나서 얘기를 해야겠다.’


“아, 또 무슨 생각을 해?”

“어? 아니야. 좋은 얘기였어! 고마워.”

“잉? 뭐가 좋은 얘기라는 거야. 얼버무리지 말고 얘기해봐.”

“그냥! 같이 고민해주고 이야기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좀 더 고민하고 해결해볼게.”

말해줄까 하다가, 해결한 후에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서 번지르르하게 얘기했는데, 해결이 안 되면 민망할 것 같았다.

“내려가자! 춥다!”

그렇게 엉켜있던 실뭉치의 시작점을 찾은 느낌으로 옥상에서 내려왔다. 이제 만나는 일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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