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보이지 않는 가치

3. 만남

by 청리성 김작가

<보정 회사 로비>


“안녕하세요? PH 기획에 김영광이라고 합니다. 마케팅에 한 차장님 뵈러 왔는데요?”

“한 차장님이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안내 데스크에 있던 아가씨가, 앞에 붙어있는 무언가에 손가락을 대고 아래로 내리다 멈췄다. 그리고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네, 차장님. 로비에 손님 오셨습니다. 네, PH 기획에 김영광 님이라고 하십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반쯤 일어서더니, 내 왼쪽 방향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기다리라고 했다. 소파에는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몇 사람이 군데군데 앉아있었다. 어디 앉을까 살피고 있는데, 그중 한 명의 번호표가 호명되었다. 보정 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와 앉아있던 그 사람은 반갑게 인사하고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 나를 위해 마련된 그 자리에, 바로 앉았다. 점심때가 되어서인지, 사람들의 이동이 많았다. 여러 사람이,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면서 몰려나가기도 하고, 두 사람이 서로 앞에 바닥만 바라보며 진지한 표정으로 나기도 했다. 누군가는 약속 시간에 늦었는지, 외투를 반쪽만 걸치고 통화를 하면서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참 열심히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런 모습으로 뛰어다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그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일이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보냈다.

소파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제짝을 찾아 자리를 떠났다. 떠나는 사람만 있고 새로 앉는 사람은 없었다. 이제는 소파에 남은 사람은 나 혼자다. 시계를 보니, 내가 도착한 지 20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아! 왜 안 내려오는 거야?’

빨리 올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한 마음이 점점 올라왔다. 20분이 좀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 그가 내 앞으로 왔다. 여유 있게.

“과장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죠?”

‘참 뻔뻔하네. 최소한 빈말이라도 미안하다는 멘트는 날려야 되는 거 아니야?’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차장님도 잘 지내시죠?”

“저야 뭐. 그렇죠.”

한 차장은 시계를 잠시 보더니 내게 물었다.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오랜만에 같이 식사하실까요?”

“네! 좋습니다. 가시죠.”


나는 앞장서서 로비의 커다란 회전문을 밀었다. 한 차장은 내가 있는 다음 칸을 기다렸다, 돌아가는 회전문에 맞춰 걸어 나왔다.

“뭘로 하실까요?”

나는 따뜻한 국물의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의향을 물었다. 그게 예의니까.

“글쎄요. 뭐가 좋을까….”

이 사람은 나에게 묻지 않았다.

“차장님이 골라주세요. 이쪽은 그래도 차장님 회사 근처니까 잘 아시잖아요.”

“그럼 중국집 가시죠? 거기는 메뉴가 다양해서 편하게 고를 수 있으니까요.”

“그러시죠!”

나쁘지 않았다. 짬뽕밥을 먹으면 되니까. 한 블록을 지나 바로 있는 중국집에 들어갔다.

“여기 메뉴판 좀 주세요!”

원래 세팅되어있던 컵에 따듯한 차를 따라주고 유리 주전자를 내려놓는 종업원에게 말했다.

바로 메뉴판을 가져왔고, 식사 페이지를 펴서 한 차장을 향해 돌렸다.

“뭐로 하실까요?”

“전 볶음밥으로 할게요.”

“볶음밥 하나 하고 짬뽕밥 하나 주세요!”

종업원은 주문한 음식과 수량을 되물은 후, 메뉴판을 가지고 주방으로 가면서 우리가 주문한 메뉴를 외쳤다. 재확인이라도 하라는 듯.


“어제 술 드셨어요?”

“예? 아니요? 원래 얼큰한 국물을 좋아합니다. 특히 이렇게 춥고 바람 부는 날은 딱이죠! 하하하!”

“하긴 그렇긴 하죠. 근데, 왜 직접 오셨어요? 퀵으로 보내셔도 되는데.”

한 차장은 그렇게 말하고 차를 한 모금 넘기면서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한 차장의 시선이 좀 껄끄러워 나도 같이 차를 한 모금 넘기면서 대답할 시간을 벌었다. 내가 온 이유는 명확했다. 내가 들고 온, 다섯 번째 샘플이 마지막 샘플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명확하게 인지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퀵 비용은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생각이 드니, 애꿎은 차만 마셔댔다.


“오랜만에 차장님도 뵙고 하려고 왔죠. 이렇게 같이 식사도 하고 좋은데요?”

특별히 할 말이 없을 때 쓰는 멘트를 던지고 반응을 살폈다.

“그래요? 전 뭐 따로 하실 말씀이 있어서 그러신 줄 알았죠.”

이 사람도 뭔가 개운하지 않은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은, 보통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봐서 자연스럽게 내가 하려는 말을 녹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왔다고 했는데, 마치 기다린 듯 얘기하면 너무 속보일 것 같았다.


“볶음밥이 어디시죠?”

“네, 이분이요.”

종업원은 먼저 짬뽕 국물을, 한 차장 앞에 내려놨다. 누가 서빙을 하더라도, 이 사람이 볶음밥을 시켰다는 것을 표시라도 하듯. 음식이 동시에 나왔다. 나는 국물을 먼저 한 숟가락 떴다. 국물 맛이 괜찮았다. 인위적이지 않은 얼큰함과 진한 국물이 좋았다. 자연스레, 국물은 서너 번 더 떠먹고 밥을 말았다.

“맛 괜찮아요?”

“네. 맛있는데요. 제가 딱 좋아하는 맛입니다.”

한 차장은 본인이 만든 음식에 대한 평가라도 받은 듯, 엷은 미소를 띠며 짬뽕 국물을 한 숟가락 떴다. 맛을 음미하다 고개를 살짝 몇 번 끄덕였다. 그에 입맛에도 맞나 보다.

“그나저나, 일할 때 제가 좀 귀찮게 해 드리는 편이지요?”

순간, 입에 머물고 있던 밥과 국물을 내뿜을 뻔했다. 꼭꼭 숨기고 있었는데, "여기 있지?" 라고 가리키는 것처럼 뜨끔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았지?’

“아, 아니에요. 귀찮긴요. 저희가 잘 캐치해서 좋은 제안을 해야 했는데, 오히려 번거롭게 해 드린 건 아닌가 싶네요.”

“번거롭긴요. 제가 일을 그냥 그냥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작은 거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겠더라고요.”

‘이건 뭐지? 지적인가? 우리가 제대로 못 하고 있어서 그냥 못 넘어갔다는 건가?’

“확실한 게 서로 좋죠. 저희도 그게 좋습니다. 괜히 나중에 결과물 나왔는데 문제 생기는 것보다는 낫죠”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면 안 되는데, 어떻게 반전을 시키지?’

한 차장은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이야기를 꺼냈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는 모양으로 봐서는 우리가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하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 이런 걸, 돌려치기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재요청할 때마다 사실 마음에 걸렸는데 한시름 놨네요.”

그렇게 말을 던지고, 시선을 내리면서, 밥을 한 숟가락 떠서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숙제를 마친 아이의 표정처럼, 편안해 보였다.

‘아…. 이렇게 마무리되면 안 되는데.’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야 할 상황까지 몰렸다. 눈앞에 박 주임 얼굴이 아른거렸다. 박 주임이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샘플을 들고 직접 간다고 했을 때, 기대하는 눈빛을 봤기 때문이다.

‘더는 이렇게 작업하지 않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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