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지
“여기요! 단무지 좀 더 주세요!”
한 차장은 접시에 있던 마지막 단무지를 집어 들고 종업원에게 주문했다. 그 소리에, 머리를 스치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이때다!’
“단무지는 공짜니까 많이 먹어도 뭐라 안 하겠어요. 그죠?”
“에? 무슨 말씀이세요. 이것도 다 돈이죠. 이 볶음밥과 짬뽕밥에 다 포함된 거예요.”
‘그렇지!’
한 차장은 무슨 한 맺힌 사연이라도 있는 듯, 내 말에 발끈하면서 수저까지 내려놓고 말을 이어갔다.
“저희 어머니가 식당 하시거든요. 예전에 가끔 도와드리곤 했는데, 그때 김치를 엄청나게 먹는 사람이 있었어요. 점심때 혼자 와서 국밥 하나 시켜놓고, 테이블 위에 있던 배추김치 한 통을 거의 다 먹는 거예요. 왜 예전에 배춧값이 엄청나게 올랐을 때 있잖아요?”
“그랬던 적이 있었죠. 아니, 종종 있죠.”
“어머니는 그 사람 있을 때는 말을 못 하셨지만, 나가고 나면, 밥값보다 김치값이 더 나갈 거라고 혼잣말을 하셨어요. 배추에 고춧가루에 기타 양념에 다 하면 그렇지 않겠어요?”
“그렇겠네요. 사실 따져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그렇죠?”
“그럼요 공짜가 어디 있겠어요. 다 어딘가에 포함된 거죠.”
‘그렇게 잘 아는 놈이 왜 그런 거니?’
“네, 맞는 말씀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죠. 어딘가에 다 포함된 거죠.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예를 들어, 노력이나 시간 뭐 이런 거요.”
한 차장은 갑자기 먹던 동작을 멈췄다. 일시 정지가 된 것처럼. 그러더니 수저를 천천히 내려놓고, 차를 한 모금하고 입을 뗐다.
“그 말씀하시려고 오신 거군요?”
“네? 무슨 말씀인지….”
‘눈치가 빠르네.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잘 얘기해보자. 지금이 타이밍인 것 같으니.’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저도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거든요.”
“무슨 기분이요?”
“제가 과장님에 클라이언트인 것처럼, 저도 클라이언트가 있잖아요? 그중에, 멋대로인 사람이 있어요.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해서 일 시키고, 우리 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타임라인 정하고. 뭔가 싶었죠. 그때 기분이 그랬어요. 그 사람이 생각하는 내 시간은, 공짜인 것 같은 느낌. 참 그렇더라고요. 자신의 시간은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시간이나 노력은 공짜처럼 생각하고 사용하려는 사람. 별로예요.”
“그런 사정이 있으셨군요? 말씀을 들으니, 차장님 마음이 많이 그러신 것 같네요.”
자신의 아픈 사정을 이야기하는 한 차장이 갑자기 안쓰럽게 느껴졌다. 사실, 우리한테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한 차장이 말한 사람은 공짜를 넘어 갑질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알아요. 제가 얼마나 귀찮게 해 드리는지. 근데 이건 알아주세요. 그냥 대충 보고 넘기는 건 아니라는 걸요. 잘 본다고 봤는데, 수정해서 샘플이 오면 고쳤으면 하는 게 바로 보이는 거예요. 그냥 갈까 하다가도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저도 아닌 척은 하지만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어요.”
한 차장은 마치 나에게 고해성사라도 하듯, 자신의 심정을 떨어놨다. 이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뭐라고 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그러셨군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희가 더 잘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니에요. 잘해주고 계세요. 제가 요청하는 거에 따라 잘 맞춰주고 계세요. 어떤 느낌인지 저도 잘 아니까, 앞으로는 그 점 고려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너무 감사하네요.”
“말씀 안 해주셨으면, 저도 눈치 못 챌 뻔했어요. 제가 부당하다고 느꼈으면서도, 제가 그렇게 하고 있었다는 게 참 그렇네요. 죄송해요. 박 주임님한테도 말씀 좀 꼭 전해주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더 챙길게요. 혹시 불편하신 거 있으시면 저한테 바로 연락해주셔도 돼요.”
“네 그럴게요. 그런 의미에서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사려고 왔는데요. 두세요.”
“그래야 제가 맘이 편할 것 같아서요. 저 불편하게 하실 거예요? 하하하!”
“아…. 네, 그럼 제가 맘 편~하게 해 드릴게요. 하하하!”
내가 먼저 밖으로 나왔다. 아까는 차갑다고 느꼈던 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밥 먹은 열기 때문이지, 해결이 잘된 마음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쾌한 공기가 참 좋았다. 한 차장이 계산하고 밖으로 나왔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아닙니다. 더 좋은 걸로 보답했어야 하는데, 다음에 소주 한잔해요. 제가 살게요.”
“누가 사면 어떻습니다. 소주 좋습니다. 참, 여기 샘플이요. 얘기에 빠져 그냥 들고 갈 뻔했네요. 하하하!”
“네, 고맙습니다. 이번에는 더 수정할 건 없을 거예요. 아니! 이번에는 있어도 없어요. 하하하! 그렇게 할게요.”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확인하고 말씀 주시면 바로 제작 들어갈게요.”
“네, 최종 컨펌은 박 주임님한테 얘기할게요. 아무튼 고마워요. 과장님 아니었으면, 저는 계속 제가 싫어하는 사람이 되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제가 더 고맙습니다. 앞으로 자주 대화하면서 풀어가요.”
“네, 그러시죠. 그럼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들어가세요.”
생각보다 잘 그리고 쉽게 해결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진작 올 걸 그랬나?’
얘기하지 않고 우리끼리만 투덜댔으면,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을 뻔했다. 행동하지 않으면 확률이 0%지만, 행동하면 최소한 1%라도 된다. 1%가 100%를 만든다. 모처럼 외근 후 회사에 들어가는 마음과 발걸음이 가볍다. 이 소식에 기뻐할 직원들 얼굴을 떠올리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지하철을 타려고 내려가는데, 노인이 떠올랐다.
‘그 노인의 말이 사실인가?’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보지 못했지만, 오뎅집에서 경험했던 이야기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실마리가 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추위를 피하고 싶어, 지하철역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뛰어들었다. 내일 출근길이 기대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외근을 마치고 회사에 들어가는 마음과 출근하는 마음이 이렇게 기대가 되고 가벼운 마음인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