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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May 28. 2021

4. 생각의 무게 중심

생활

표현이 무뚝뚝해진 첫째 딸을 보면, 어릴 때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마음이 그렇진 않다는 것은 가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된단다. 성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무덤덤하게 반응한다고 해서 거리를 느끼고 물러서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이댄다. 그것이 첫째 딸과의 마음 간격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가만히 있으면, 점점 내려간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의 속도에 맞춰 한 계단씩 올라가야 그나마 현재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마음이 내려간다면 그보다 빨리는 아니더라도, 속도에 맞춰 내 마음이 올라가야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 안타까운 상황은, 아이가 예전만 못하다며 서운해하고, 자신도 그와 같이 행동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조금씩 벌어지고 멀어진 간격은 다시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마음 간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첫째 딸이 초등학생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칠판에 자음만 쭉 나열해서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밑에 ‘노래 가사 임. 맞추면 천재~!!!’라는 메모를 달았다. 맞추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무슨 노래일지 오랜 시간 고민했다. 자음에 맞는 모음을 한둘씩 대입하면서 유추해보았다. 몇몇 단어를 조합해봤지만, 노래 가사는 아니고 그냥 단어일 뿐이었다. 최신 가요를 잘 모른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답 비슷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쥐어짜고 있던 그때, 아내가 지나가면서 한마디를 던졌다.

“그거 에이핑크에 ‘미스터 추’야”

어린 시절 소풍에 가면, 가장 기대를 받았던 게임이 있다. 보물 찾기다. 한 명씩 “찾았다!”를 외치며 어디선가에서 나오는 친구들을 볼 때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렇게 나무 사이를 열심히 찾고 있는데, 보물을 찾은 친구가 지나가면서 “바위 아래에 있어.”라고 말을 툭 던지고 갔다. ‘헛수고 그만하시지’라며 내 노력에 일침을 가하는 느낌이었다. 아내의 말 한마디가 그런 느낌이었다.


가사를 찾아서 비교해보진 않았다. 

아내가 정답을 말했지만, 확인해보진 않았다. 하지만 그 노래가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때 당시 첫째 딸이 입에 달고 다니며 부르던 노래가 그 노래였기 때문이다. 노래뿐 아니라, 노래에 맞춰 춤까지 췄다. 춤추는 모습을 보며 좋다고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는데, 그 노래를 맞추지 못하다니. 어두운 건 등잔 밑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어두웠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듣고 지켜봤던 노래와 춤이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나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왜 이 문제가 어려웠고, 맞추지 못했던 것일까?’

맞히지 못한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다. 이 문제를 맞힌다고 특별한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수능시험에서 틀린 문제를 복귀하는 것보다 더 간절하게 느껴졌다. 아이와 친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은,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뒤처지고 싶지 않았다.


‘아!’ 

왜 이 노래 가사를 맞히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노래 가사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중심에, 딸아이는 없었고, 나만 있었다. 문제를 낸 사람은 딸아이인데, 나를 중심으로 생각했다. 출제자의 의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들어왔던, 출제자의 의도 말이다. 문제를 낸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거나, 관심 있는 범위 내에서 출제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간단한 상식을 간과했다.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그 무게 중심을 자신에게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동원하여, 문제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시험에 나온 문제라면,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문제는, 문제에 집중하기보다 사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그 답을 좀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사가 무엇인지에 집중하지 말고, 아이에게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아이가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했다면,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본다.     


호아킴 데 포사다와 함께 베스트셀러 <바보 빅터>를 쓴, 레이먼드 조의 <관계의 힘>이라는 책에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내가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는 것과 같다.      


독일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거액의 상금을 걸고 흥미로운 공모전을 실시했다. 
‘만약 당신에게 10만 유로가 생긴다면 얼마나 멋지게 돈을 쓸 것인가?’ 공모전 심사는 청취자 투표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으로, 실제 10만 유로를 지급하겠다고 공표했다. 공모가 시작되자 많은 글이 방송사로 쏟아졌다. 우주여행을 하겠다는 사람, 무인도를 사서 로빈슨 크루소가 되겠다는 사람, 프로포즈 광고를 만들어 TV에 방송하겠다는 사람 등등 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사람과 계층에서 응모에 참여했다.      

거액의 당선자에 관심이 쏠리던 가운데, 수많은 응모자를 제치고 상금을 차지한 주인공은 머리가 희끗한 트럭 운전사였다. 그의 아이디어는 무엇이었을까? “상금의 4분의 3인 7만 5,000유로를, 나를 뽑아준 독일 시민들을 위해 하늘에서 뿌리겠다.” 2007년 1월 26일, 약속대로 카이제르슬라우테른이란 마을의 광장에서 기중기에 올라탄 채 광장에 모여든 군중을 향해 뿌렸다.     


트럭 운전사가 당첨 주인공이 된 이유는, 기발할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게임의 결정자가 청취자라는 게임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들에게 먼저 주었기 때문에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협상 전문가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항상 먼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고 한다. 자신이 줄 것을 먼저 생각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협상에 성공한다고 한다. 주어야 받는다는 건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룰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문제는 사람이 내고, 사람으로부터 발생한다.

문제에 관심을 두기보다, 사람에게 관심을 두어야 하는 이유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야 하는 것과 같다.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아이의 상태를 살피지 않는다면, 아이의 말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 좋은 답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를 잘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좋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마주하는 사람을 잘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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