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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Jun 05. 2021

8. 평화로운 가정

생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떠올리면, 대부분 아무런 다툼이 없는 가정을 생각할 것이다.

평화로운 가정을 행복한 가정으로 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행복한 가정이 항상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평화로운 상태가 단순히 다툼이 없는 상태로 정의되는 것은 곤란하다. 서로를 배려하면 다툼이 생길 가능성이 적지만, 서로 부딪히지 않아도 다툼이 거의 생기지 않는다. 서로 부딪히지 않는다는 것은,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 생활하는 모습이다. 집에 같이 있지만,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고 누군가는 텔레비전을 본다. 그리고 누군가는 방문을 닫고 다른 무언가를 한다. 그러면, 서로 다툴 일이 적어진다. 하지만, 이 모습을 보고 평화롭다고 말하지 않는다. 행복한 가정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서로 다툰다는 것은 의견이 부딪힌다는 것이다.

한 가정에 산다고 해도,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먹고 싶은 것이 다를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것이 다를 수도 있다. 이럴 때 다툼 없이 해결하고자 한다면, 각자 먹고 싶은 것을 먹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함께 해야 한다. 함께 식사하고 함께 여행도 간다. 서로의 의견을 내다보니 논쟁이 생길 수 있다. 그 논쟁이 다툼이 되고, 한동안 서로 이야기하지 않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행복한 가정이든 그렇지 않은 가정이든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평화로운 가정은 이런 상황을 오랜 시간 지속하지 않는다.

서로가 다시 한자리에 모여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했는지, 또는 기분이 나빴는지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고 다음에는 주의할 것을 약속한다. 그렇게 서로의 다른 마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다시 합체한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게 되고 더 배려할 수 있게 된다. 똑같이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간다.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안아주면서, 사랑하는 방법을 함께 배워가는 것뿐이다. 서로 다투는 횟수가 줄어들게 되고, 다툼이 생겨도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오는 방법을 아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다.      


내 기억은 물론, 가족들의 기억에서도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악마가 내 안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면, 달리 설명한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술 한잔 마시고 기분 좋게 집에 왔다. 식탁 위에는, 커다란 유리 접시에, 꼬마 김밥이 몇 줄 남겨져 있었다. 아이들한테 해주고 남은 것이라고 했다. 출출하던 참에 하나를 집어먹었는데, 맛이 괜찮았다. 아이들도 식탁 곁에 앉아서 맛있지 않냐고 대답을 재촉했다.    

  

맛있다는 대답 다음에는, 아이들이 그날 있었던 일을 주저리주저리 읊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으며, 하나둘 집어먹다 보니 어느새 다 먹어버렸다. 그렇게 먹고 앉아있는데, 아내가 둘째에게 할 것을 다 했냐며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날 해야 할 숙제나 기타 해야 할 것들을 말한다. 아이는 이렇게 저렇게 대답하다 뭐가 서러웠는지 눈물을 보였다. 둘째의 잦은 눈물을 못마땅해하던 아내는, 소리를 높여서 몇 마디를 했다. 그때였다.   

   

내 안에 악마가 들어왔다.

무엇 때문인지 설명할 순 없지만,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왜 얘를 그렇게 나무라냐고 언성을 높였다. 아내는 당황하면서, 왜 둘째의 눈물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냐고 따져 물었다. 그렇게 아이를 사이에 두고 언성을 높이다가, 눈앞에 보이던, 꼬마김밥이 담겨있던 접시를 집어 들고 말았다.  

   

아내는 접시를 던지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지만, 그 말에 더 자극을 받았다.

결국, 접시를 식탁에 던졌는데 아내의 핸드폰 위로 떨어졌다. 아내의 핸드폰 액정 가운데가 찍혀서, 움푹 들어간 그곳을 중심으로 하얀 선이 무수히 생겼다. 접시는 산산조각이 나서, 온 집안에 흩어졌다. 아차 싶었지만, 멈춰지지 않았다.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큰 소리를 퍼부었고, 그에 질세라 나도 물러서지 않았다. 둘째는 물론 셋째는 더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고, 방에 있던 첫째가 나와서 중재를 하기 시작했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큰 잘못을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아마도 악마가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집을 나가겠다고 난리를 부렸고, 나는 아내를 막아섰다. 사실 그때 당시, 회사 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아내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해명 아닌 해명을 했다. 다행히도 아내는 이해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다. 바로 아이들을 식탁으로 불러 모았다.      


무조건 아빠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그런 행동을 한 건 무조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말했던 이유를 대략 설명해주었다. 난폭한 행동을 했던 것이 엄마나 너희들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아이들에게 나의 힘든 상태를 거들어주었다. 내가 미웠겠지만, 아이들의 충격과 상처가 더 먼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한 번씩 안아주면서, 다시 마음 깊이 미안하다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이 일을 빨리 잊었고, 예전처럼 다시 좋은 모습으로 식탁에 마주한다. 가끔 식탁에 새겨진 상처를 보고 아내가 놀리면, 모두 그냥 한번 웃고 넘어간다.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마음에도 상처나 기억이 지워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평화로운 관계나 가정은, 다툼이 생겼을 때 빨리 봉합해야 유지된다.

시간을 끌어도 안 되고, 그날을 넘겨도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하신 말씀에도 그런 내용이 있다. ‘화해하십시오. 석양이 지기 전에 화해하십시오. 매일 그렇게 하십시오.’ 화해할 일이 있으면, 그날을 넘기지 말라는 말씀이다. 부부싸움을 원만하게 해결하는 원칙 중에도, 절대 그날을 넘기지 말고 화해하라는 말이 있다. 업무에 타임라인을 맞추는 노력처럼, 다툼을 풀고 화해하는 것을, 그날을 넘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하루 이틀 쌓이는 앙금과 오해의 무게는 몇 곱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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