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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리성 김작가 Jun 06. 2021

1. 사춘기의 서막

대화

초등학생 때, 첫째 딸은 주변 엄마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친구들과의 사이도 좋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야?”라며 부러움과 질투 섞인 말을 종종 들었다. 지금도 변함없이 두루두루 잘하면서, 고등학생이 되었다.     


6학년이 되고, 선생님과 첫 면담을 하고 온 아내는 너무 뿌듯했다며,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이렇게 전했다. “어머님, 왜 오셨어요? 너무 잘해서 상담할 게 없는데요. 딸을 너무 잘 키우셨어요” 지금까지 첫째 아이의 선생님 면담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거의 없는 것으로 기억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반대의 상황이 발생했다.

부모 참여 수업을 다녀온 아내가 방방 뛰었다. 그렇게 칭찬했던 선생님이, 아이를 유난히 미워하는 모습이 보였다고 했다. 행동 하나하나 지적하는데, 너무 창피했다고 한다. 아이가 들어오자, 아내는 언성을 높이며 이유를 따져 물었고, 아이도 맞받아치면서 고성이 오갔다. 분이 풀리지 않은 아내는, 선생님과 면담을 해야겠다며 연락을 취했다.      


오래지 않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중간에 괜히 끼어들기가 뭐 했다. 그래서 모녀가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면서 중재할 타이밍을 살폈다. 건너들은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아이 친구 중에 한 친구가,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없어 보였다. 말과 행동이 삐딱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안 듣는 것은 기본이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 의견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건 아닌데요!”라며 버릇없이 잘라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다.

많은 아이를 챙기다 보면 정신을 빼앗길 수도 있고, 오해하거나 잘못 이야기하기 할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 대해, 조용히 따로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앞에서 면박을 주듯이 말하는 건 좋지 않다. 그런 말과 행동이 선생님을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됐다. 선생님 눈에 그 아이가 좋게 보일 리 없고, 같이 다니는 우리 딸도 좋게 보지 않아서 그랬을 거로 추측했다.     


어느 정도 상황이 파악됐다.

끼어들 타이밍을 보고, 격렬하게 대화하고 있는 모녀 사이에 슬쩍 앉아, 내가 앉아서 물었다.

“우리 딸이 잘못한 건 없니?”

“네? 저는 원래 하던 대로 했는데요?”

“요즘 말투를 보니, 예전과는 다르게, 안 좋은 말투가 나오던데. 우리 딸이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투를 사용한 건 아니니?”

“제가요? 아닌 것 같은데….”

아이는 말끝을 흐렸다. 혹시 그런 적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최근에, 아이가 하지 않던 말투를 사용하는 걸 들었다.

내 귀에 불편하게 들렸고, 거슬렸다. 그래서 기억하고 있다. 이해가 안 가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뭔 소리예요?”라는 말투가 가장 대표적이다. ‘뭔’이라는 단어를 ‘무슨’이라고만 바꿔도 뉘앙스가 달라지는데, 왜 그런 표현을 사용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을, 아이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아까 이야기한 친구랑 친하니?”

“네.”

“그럼, 그 친구가 하는 행동이나 말투가 맞는 것 같니?”

“어…. 그건 아닌 것 같긴 한데….”

여전히 말끝을 흐렸다. 본인이 생각해도 좋은 말투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 그럼, 우리 딸이 그 친구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내일 학교에서 그 친구에게 이야기해봐. 네 말투와 행동은 옳지 않은 것 같다고. 선생님 말씀이 정말로 아닌 것 같으면, 정중하게 이야기하거나 나중에 따로 말씀드리라고 해. 그 친구가 우리 딸한테 섭섭해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그렇게 얘기해야 해. 친구니까. 알겠니?”

아이는 초점 없는 눈으로 말없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아마 그 친구는, 주변 친구들한테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아서 더 그럴 수 있어. 자기를 스스로 보호하려는 거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어.”

나는 예전에 유아체육을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접목해서 이야기해줬다. 7세 중에 유독 거친 아이가 있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친구를, 이유 없이 꼬집거나 때리는 행동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강하게 주의를 시키거나 손을 들고 있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아이는 관심받고 싶다는 표현을 한 거였다. 자기를 좀 봐달라는 사인으로, 못된 행동을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는 사랑에 굶주리고 있었다. 이후부터, 한 번 더 말을 걸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과격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받기 위해 좋은 행동을 했다. 관심받기 위해선 못된 행동이 더 효과가 있겠지만, 사랑받기 위해선 좋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고나 할까?     

 

“와! 아빠가 어떻게 알았어요? 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요? 아빠 얘기 들어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에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당했던 적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친구들한테 관심받고 싶어 해요.”

“그러니? 그렇다고 그 친구가 한 행동이 옳은 게 아닌 건 알지? 그 친구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꼭 이야기해 줘. 더 안 좋아지지 않게. 그리고, 우리 딸도 앞으로 말할 때 생각 없이 막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주의하도록 하자. 알겠니?”

“네”     


참여 수업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어느 정도 마무리했다.

남은 건 아이의 몫으로 맡겼다. 아이가 그 친구에게 어떻게 말을 했는지, 그리고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선생님께 다시 신뢰를 회복할지는 본인의 몫으로 맡겼다. 아내에게도 지금 시점에서 면담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지켜봐 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에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친구에게도 잘 이야기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선생님께 다시 신뢰를 회복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가끔 첫째와 아내가 언성을 높이면서 의견이 충돌될 때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가 가장 심했는데,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는 말이 딱 그 모양이었다. 주로 퇴근하면 보게 되는 장면인데, 다시는 말도 안 할 것처럼 한바탕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상황 파악을 하기 시작한다. 중재는 거의 내 몫이었으니까. 전반적인 상황 파악을 위해, 둘째나 셋째가 있으면 물어보고 아니면 씩씩대는 아내에게 듣는다. 들으면서 아이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맞장구를 쳐주고, 아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면 조곤조곤 이야기해줬다. 누구 편드는 거냐며 서운해할 때도 있지만, 이해할 때도 있다. 그리고 첫째를 찾아간다.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소연할 때도 있고 눈물을 흘리면서 억울함을 호소할 때도 있다. 아내와 마찬가지로 동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맞장구쳐주고 이해시켜야 할 부분을 이해시키기 위한 말을 했다.      


아내와 아이의 공통된 의견이 있다.

상대방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잘못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하지만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서로의 말이 더 엉켰고 풀기 어렵게 되었다. 나의 역할은 모녀의 얽혀있는 관계를 푸는 것이고, 그 방법은 간단했다. 이미 각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1:1 면담(?)을 마치면 식탁으로 불러 모은다.

서로가 자존심 때문에 말하지 못했던, 자신이 인정한 잘못을 설명해 준다. 그러면 서로의 표정은, ‘어? 모르는 줄 알았는데 알고는 있네?’였다. 각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상대방의 잘못을 당사자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좀 풀어진다. 모른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에, 굳었던 마음이 서서히 녹기 시작한다. 더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서로 조금씩 조심하기로 약속하고 좋게 마무리한다. 물론, 그래도 이런 상황이 반복 재생되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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