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순
예상대로 강변북로에 진입하자 밀리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차분하게 앞차를 주시하면서 조금씩 이동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다 열어젖히고 팔 길이를 과시하려는 것처럼 밖으로 뻗어놓은 손끝에 담배가 걸쳐져 있는 남자가 보였다. 나처럼 약간은 멍한 눈으로 앞을 주시하면서 차분하게 앉아있는 사람도 있고,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도 있다. 통화를 하는 것 같은데, 뭐가 그리 좋은지 온갖 리액션을 하는 사람도 있다.
차 안이라는 공간은, 옆에 있는 차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독립된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동 중에 원하는 대로 담배를 피울 수 있고, 전화 통화를 큰소리로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공간 활용을 잘하던 한 여자가 기억난다. 그 여자는 운전 중에, 화장을 하고 있었다. 잘 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을 쳐다봤지만, 화장하는 게 맞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화장을 하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버스나 부대끼는 지하철에서 하는 것도 신기한데, 운전하면서 화장하는 모습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동 중에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정도의 멀티태스킹을 하긴 하지만, 화장은 넘사벽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이제 강변북로를 벗어나는 길만 남았다. 하지만 최대의 고비가 기다리고 있다. 영동대교를 타기 위해서는, 1Km 이상 한참 늘어선 줄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 라인은 새벽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무정차 통과를 해본 기억이 없다. 다른 곳도 대교를 타고 강을 넘어가는 길이 막히겠지만, 유독 더 막힌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촉박할 때는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다. 가끔은 도박한다는 심정으로, 그 옆 차선으로 달릴 때가 있다. 그러다 자동차와 자동차 사이에, 내가 들어갈 틈이 있으면 바로 들어간다. 만약 틈이 없다면? 조금 더 직진해서 동호대교를 건넌다. 줄에 그대로 서 있으면 어차피 늦는 거, 도전 한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처럼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은 내비게이션을 잠시 뒤로 넘기고, 카톡이나 SNS를 살펴본다. 앞차와의 간격을 살피면서 힐끔힐끔 핸드폰을 봤다.
‘빵~~~~’
뭐지? 경적이 ‘나 화났소!’ 하는 것처럼 굉장히 귀에 거슬리게 들렸다. 운전을 오래 하다 보면 이런 신기(?)가 생긴다. 차가 차로 보이는 게 아니라, 사람으로 보인다. 느껴지는 게 있다. 차 뒷모습만 봐도 초보인지 능숙한 사람인지 알 수 있다. 끼어들기를 할 때, 이 차가 끼워줄지 안 끼워줄지도 대충 보인다. 사람 얼굴을 보면 대충 성격이 보이는 것처럼. 뒤에서 들린 경적이 그렇다. 순간 고개를 들고 앞을 봤다. 내 앞의 앞에 차가 반쯤 걸친 상태에서 두 차로를 막고 있었다. 옆 차선에서, 그 차 때문에 서 있게 되자 신경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걸쳐있는 차의 뒷모습은, 고개를 땅속에 처박은 강아지 마냥 어쩔 줄 몰라하는 모양새였다. ‘좀 기다려주지’ 나를 향한 경적은 아니었지만, 계속 들으니 거슬렸다. 끼어들던 차는 간신히 몸통 전체를 라인에 합류시켰다. 경적을 울리던 차는 그 옆에서 서서 다시 한번 길게 경적을 울리고, 신경질적으로 쌩하니 달려갔다. 급해서 그런 게 아니었나 보다. 그냥 가지 않고 옆에서 다시 저러고 가는 걸 보니.
클래식 음악과 함께 고요하던 나만의 시간을 잠시 방해받고, 다시 고요 모드로 들어갔다. 앞 차와의 간격을 잘 유지하면서, 단톡방에 올라온 글들을 하나씩 넘겼다. 꼭 봐야 할 톡방은 여유 있을 때 보기 위해 남겨두고, 넘겨도 되는 톡방을 클릭했다. 성격이 이상한 건지, 희한하게 핸드폰에 빨간색 숫자가 있는 게 싫다. 두더지 게임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를 때려잡듯, 빨간색 숫자를 때려잡지 않으면 해야 할 것에 소홀한 것처럼,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게 빨간색 숫자를 최대한 없애고 있는데, 또다시 침묵을 깨는 경적이 들렸다. 이번에도 아까 끼어든 차가 문제였다. 끼어든 차는 자신이 끼어들어서인지, 중간에 끼어드는 차에 양보하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한 대만 양보하는 게 아니었다. 그 차량 말고 한 대를 더 넣어줬다. 뒤따라오던 차량도 그걸 봐서 그런지, 그 앞에서 깜빡이를 켜고 기다렸다. 뒤에서 경적을 울린 사람은, 참다못해 누른 것 같았다.
끼어드는 사람은 양보를 받아 좋겠지만,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허무하다. 바보라서 기다린 게 아닌데, 마치 ‘메롱’ 하면서 바보라고 놀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틈이 생겨 끼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이 상황은 좀 그렇다. 뒤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런 기분일 거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양보가 누군가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다.’ 언젠가 한 번 든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양보를 한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묵묵히 기다렸던 누군가에는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여겨질 수 있다. 오랜 시간 기다린 사람의 처지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별 느낌이 없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면, 나도 경적을 크게 울렸을 게 틀림없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으니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얼핏 봤던,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내 앞에 벌어졌다. 책처럼 사람의 목숨이 달린 건 아니지만, 이럴 땐 뭐가 옳은 행동인지 헷갈렸다.
‘내 사랑~’
아침에 떴던 핸드폰 문구가 다시 한번 떴다. 아차! 전화한다는 걸 또 깜빡했다. 또 한 소리 들으려니 통화버튼을 누르기 꺼려졌다. 안 받으면 또 뭐라 할 테니 짜증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심정으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뭐야! 왜 안 와?”
이 톤은 뭔지 아리송했다. 뭐라고 하는 건지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두 가지를 적절히 섞었는지 뉘앙스를 파악하기 어려웠다.
“전화한다는 걸 깜빡했네. 미안. 출근하는데 부장님이 ‘한정’에서 샘플 받아오라고 하셔서, 지금 그리로 가고 있어.”
“그래? 난 또, 왜 안 오나 했잖아. 알았어. 조심히 다녀와.”
“그래~”
걱정하는 톤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잔소리를 퍼부었을 테다. 아침에 통화했던 사람이 오지 않으니 걱정이 될 만도 하다. 통화하는 사이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지점으로 진입했다. 이제 앞으로 쭉쭉 빠져서 나가는 일만 남았다. 다행히 이후부터는 속도가 많이 나진 않아도 멈춤 없이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