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관계

by 청리성 김작가
『쉽고 당연하게 만들면, 그 대가를 고스란히 앉게 되는 것』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힘없는 정의가 무능하다는 말은, 신념이 있어도 실행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도 추진할 힘이 없다면, 변화시킬 수 없다.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도 막아설 힘이 없다면,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힘이 없으면 분을 삭이며 받아들이거나 할 수 있는 게 없는 자신을 원망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 냉정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자신의 강점을 살려 힘을 기르는 노력을 꾸준히 해야 한다.

여름이 되면 해수욕할 생각에 몸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몇 달 전부터 운동을 시작하고 식단 관리에 들어간다. 원하는 순간에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필요한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근력운동을 하지 않으면서 근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정의 없는 힘이 폭력이라는 말은, 너무 자주 목격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폭행하는 부모, 애인을 폭행하거나 심지어 가족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말과 행동으로 폭행하는 사람, 한 명의 아이를 집단으로 폭행하거나 따돌리는 아이들 등등. 나이와 힘으로 폭행하고 다수가 소수를 궁지로 몰아간다. 이유는? 없다.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화풀이하는 게 대부분이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비열할 정도로 극과 극으로 변한다. 이들에게 정의는 힘이다. 힘이 곧 정의다. 이유가 무엇이고 옳고 그름이 무엇인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어쩌면 이들도 피해자일 수 있다.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지 못하니, 또 다른 누군가를 찾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될 순 없다. 영화의 대사처럼,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말이 쉽지, 평범한 사람이 힘과 정의를 운운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을’로 살아가는 현실에서는 잘못하지 않았어도 잘못했다고 해야 한다. 그래야 잘 마무리했다고 말한다. 뭘 사과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일단 사과부터 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칼자루는 상대가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네, 네” 하고, 이유도 모르면서 “잘못했습니다.”라며 살아야 할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왜 그런지에 대한 이유는 드라마 대사에서 볼 수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2>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한 아이가 병원에 입원한다. 이 아이의 아빠는 가정폭력을 일삼는 사람이었고, 외국인 아내는 이 남자에게 맞으면서 살고 있었다. 여의사가 화장실에 갔다 우는소리가 들려, 문을 열었다. 외국인 아내가 쭈그려 앉아 있었다. 눈 주변에는 멍 자국이 선명했고 입술은 터져 피가 나고 있었다. 여의사는 분노하며 남자에게 가서 따져 묻는다. 옥신각신하던 찰나, 외국인 아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커터 칼로 남편을 상해하려 달려든다. 하지만 칼이 닿은 곳은 여의사의 목이었다.

응급처치로 상처는 잘 치료되었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장으로부터, 폭력 남편에게 사과하고 조용히 마무리하라는 지시가 떨어진다. 처음에는 왜 그래야 하냐고 따졌지만, 자신이 사과해야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상황이 마무리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과하러 가는데, 김사부가 가로막고 이렇게 말한다.

“차라리 불편해하고 말아 그럼! 불편하다고 무릎 꿇고 문제 생길까 봐 숙여주고 치사해서 모른 척해 주고 더러워서 져주고. 야! 이런저런 핑계로 그 모든 게 쉬워지고 당연해지면 너는 결국 어떤 취급을 당해도 되는 싼, 그런 싸구려 인생 살게 되는 거야. 알아들어?”

좋은 게 좋은 게 아닐 수도 있다.

좋게 해결한다고 말은 하지만, 치사하고 더럽다는 생각으로 자포자기한 것일 수도 있다.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핑계를 댄 것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매번 그럴 수는 없지만,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 무엇이 옳은 것인지, 지혜를 구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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