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을 잘 가꾸는 사람이 만들어 가는 행복』
<자산어보>라는 영화를 봤다.
‘신유박해’로 정약종은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고, 형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은 유배를 떠난다. 정약용은 강진으로, 정약전은 세상 끝이라 불리는 흑산도로. 김훈 작가의 <흑산>이라는 소설과 같은 배경과 인물이라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알았다. 책을 읽을 때 머리에 그렸던 이미지를 영상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주된 내용은 다르지만, 곳곳에서 보이는 영상이 그랬다. 흑백 영상이라 그런지 더 실감이 났다.
<자산어보>는 정약전이 집필한 책 제목이다.
호기심이 많았던 정약전은, 유배지인 흑산도에서 바다 생물을 보고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바다를 꿰뚫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라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단칼에 거절당한다. 사학죄인을 도울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정약전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시도하다, 창대가 글을 독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도와주지 말고 거래를 하자고 제안한다. 자신의 글 지식과 창대의 바다 지식을 거래하자는 제안이었다.
<자산어보>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공부만 하던 선비 정약전과 평생을 바다에서 물질하며 살아온 청년이, 서로 거래(?) 하면서 우정을 쌓아가는 내용이다. 신분이나 나이 그리고 살아온 삶이 180도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지만, 오래지 않아 잘 통하는 친구가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하겠다는, 마음의 통로가 같아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전은, 한 아낙이 사는 집에 머물게 된다.
밥을 먹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강진에 있는 정약용이 보낸 제자를 통해 편지와 소식을 전달받기도 했다. 창대는 이 집에 와서 글을 배웠고, 잡은 물고기와 해물을 갖다주기도 했다. 정약전은 창대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해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아낙이 억울한 심정을 누르며 한마디 한 말에도, 정약전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회답한다.
씨와 밭에 관한 이야기다.
가부장 제도가 극심하던 시절이었던 지라, 여자의 역할은 극심한 천대를 받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로 표현되는 씨는 중요하지만, 여자로 표현되는 밭은 어떤 가치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런 말을 나누던 남자들에게 아낙이 한마디를 던진다. 아무리 씨가 좋아도 밭이 시원찮으면 씨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좋은 밭이어야 씨가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씨와 밭에 관한 비유는 많이 사용된다.
앞서 말한 생명이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을 포함해서, 살아가는 일상에서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씨는 외부의 영향을 대변하고 밭은 자신을 대변한다. 외부에서 좋은 정보가 오더라도 자신이 잘 받아들이고 숙성시키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쉽게 가늠할 순 없다. 하지만 통제 가능성을 기준으로 보면, 어느 정도 답을 낼 수 있다.
같은 조건이라면, 좋은 밭에 떨어진 씨가 좋은 열매를 맺을 가능성이 크다.
외부 조건인 씨는 내가 통제할 수 없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밭뿐이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이 ‘마음 밭’인데, 마음 밭을 잘 가꾸면 어떤 씨가 들어와도 크게 개의치 않게 된다. 그다지 씨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불행한 사람들의 불행한 이유는 다양한지만, 행복한 사람들의 행복한 이유는 하나라고 한다. 불행한 사람은 씨를 탓하기 때문에 이유가 다양하지만, 행복한 사람은 밭을 돌아보기에 하나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