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실행

by 청리성 김작가
『의도를 명확하게 알고 출발했을 때, 원하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행동』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하라!’

수험생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오래전부터 들어왔고 지금도 듣고 있으며 앞으로도 들을 거라 확신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몇 안 되는 만고불변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답을 찾기 위해서는 문제가 있어야 하고, 문제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문제를 잘 살펴보라는 선생님의 조언이 떠오른다. 답에 대한 힌트가, 문제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게 이유였다.

강력하게 떠오르는 시험 문제가 있다.

문제가 뭐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2번 문제였고 3개를 적는 주관식으로 배점이 6점이라는 건 정확하게 기억난다. 이 문제가 현재 나의 모습을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용고시 문제였다. 다른 문제를 다 풀고 이 문제만 20~30분은 고민했던 걸로 기억된다. 고민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전날 본 친구의 노트 때문이었다.

시험장이 수원에 있었다.

몇몇 친구들이 모여 근처 모텔방을 잡았다. 각자 공부하면서 구두로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가졌다. 서로의 노트를 돌려보기도 했다. 그러다 한 친구의 노트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내용이 적혀있는 걸 봤다. 그때 왜 다른지 살펴봤으면, 지금은 또 모를 일이다. 그냥 ‘다르네?’라고 생각하고 덮었다. 이 내용이 2번 문제였다.

후회했다.

그 친구의 노트를 본 걸 후회했고 정확하게 왜 다른지 확인하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렇게 고민한 끝에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 아닌, 친구의 노트에서 봤던 내용으로 적어서 제출했다. 결과는? 내가 알고 있던 내용이 정답이었다. 허무했다. 상대평가라 소수점 차이로도 당락이 결정되는데, 1~2점도 아닌 6점짜리라니. 그래도 다른 문제는 잘 풀었으니 희망을 걸었다.


임용고시는 정답을 공개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끼리 서로 맞춰보기도 하고 학원에서 풀이를 듣기도 했다. 답이 딱 떨어지는 객관식은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않은 주관식은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확인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의견을 제출해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6점을 제외하고 점수를 살펴보니, 커트라인에 간당간당했다. 하지만 결국 떨어졌다. 정확하진 않지만, 1점 내외의 점수로 떨어진 것으로 기억된다.


내 실수는 친구의 노트를 본 것이 아니다.

그때는 그렇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이 꽤 오래갔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게 핵심은 아니다. 문제를 정확하게 다시 파악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친구의 노트가 어쨌고 내가 알고 있는 게 어쨌고 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집중하지 않았다. 그냥 헷갈린다는 이유로 거기에 쏠려, 문제를 정확하게 다시 보지 못했다.


가장 확실한 답은, 문제에서 나온다.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답을 찾으려는 노력보다,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를 가는지 명확하게 확인해야 하는 것과 같다. 초행길인데 대충 보고 출발했다 난감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명칭은 비슷한데 지역이 전혀 달라 되돌아오기도 했다.

시작이 반이다.

답을 찾을 때도 마찬가지다. 문제라는 시작을 잘 살피고 정확하게 파악하면, 반은 답을 찾은 것과 같다. 문제를 대충 보고 답을 찾으러 가는 길은, 험난하기도 하고 엉뚱한 곳에 닿을 수도 있다. 어떻게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 왜 가야 하는지를 알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보이기도 한다. 어차피 가야 하는 길이라면 정확하게 가는 게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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