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손을 뻗치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손을 내미는 마음』
나는 운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꺼렸던 건 아니고, 10여 년 전, 차량을 이용해 지방 출장을 많이 다닌 이후로 그랬다. 그 당시에는, 연 2~3만 km를 뛰었으니 운전이 질릴 만도 했다. 꼭 필요할 때아니면 운전을 하지 않으니,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의 장점도 한몫했다. 책을 읽거나 피곤하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장점은, 운전을 기피하기에 충분한 조건이다. 그렇다고 운전을 무조건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운전하면 좋은 점도 있다.
조용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운전하면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이동하는 길을 따라 하나씩 올라오는 생각으로, 추억을 음미하기도 하고 고민하던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기도 한다. 라디오에서 뜻하지 않았던 보물을 건질 때도 있다. 좋은 정보를 들을 때도 있고, 깨달음을 주는 내용을 접할 때도 있다. 평화방송을 주로 듣는데, 좋아하는 프로그램에 인사말을 남기면 소개되어 가슴이 설레기도 한다. 몇 번 보냈는데, 한 번 빼고 다 소개가 되었다. 라디오에서 내가 보낸 내용을 아나운서가 실시간 읽어주고 알아봐 주는 기분은,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운전할 때, 마음에 여유를 빼앗는 것이 있다.
초조함이다. 초조함을 유발하는 요인이 몇 가지 있다. 가장 많이 겪는 건, 시간에 대한 압박이다.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차가 밀리면, 초조함은 극에 달한다. 매우 중요한 미팅이라면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뛴다. 생리 현상이 갑자기 작용할 때도 그렇다. 꽉 막힌 도로에서 오갈 때 없는 상태가 되면, 청천벽력 그 자체다.
마음의 불편함도 한몫한다.
기분이 매우 좋지 않은 상태에서는 손과 발에 그 기운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핸들을 급하게 돌리게 되고 어쩌다 한 번 누르는 경적도 심심찮게 누른다. 발에는 힘이 들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를 내게 된다. 올림픽대로나 강변북로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막혔을 땐, 끼어들려는 차에 눈곱만큼의 자비도 용납하지 않는다. 차 안의 공기는 불편함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럴 땐, 불편한 공기를 내보내도록, 창문을 열어 심호흡하기도 한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마음은 다르다.
마음 상태에 따라 힐링 코스가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 코스가 되기도 한다. 외부의 여러 상황이 그렇게 만든다. 한적한 길이 그렇고 꽉 막힌 도로가 그렇다. 여유 있는 시간이 그렇고 촉박한 시간이 그렇다. 기분 좋은 일이 그렇고 짜증 나는 일이 그렇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게 다 외부의 탓인가?
누가 내 마음에 대고 ‘그렇게 생각해!’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배가 몹시 고플 때 빵을 보면, 허겁지겁 달려들어 먹는 사람도 있지만, 더 배 고픈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요즘같이 폭염이 지속될 때, 더워 죽겠다며 불평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야외에서 일하는 분을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같은 상황을 마주하지만 떠올리는 생각은 다르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자비의 마음이다.
자비의 한자를 보면, 사랑 자(慈)에 슬플 비(悲)다. 사랑하고 가엽게 여긴다는 의미다. 나는 이렇게 해석해 본다. 가엽게 여기는 마음이 사랑이고, 그게 자비다. 사랑은 좋은 것을 좋게 바라보는 마음도 있지만, 가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게 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참 사랑으로 살펴야 하는 사람이 많다. 더 잡기 위해 위로 손을 뻗치기보다, 조금만 아래로 마음과 손을 내밀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땡볕에 전단지 돌리는 어르신의 손을, 최소한 피하지는 말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