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을 믿고 지킴으로, 인생에 창피하지 않을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 』
“그래! 결심했어!”
역사적인 예능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 ‘TV 인생극장’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코너인데, 여기서 나온 말이다. 많은 인기를 끌었던 코너였고, 이 말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용한 유행어였다. 단막극 형식으로 진행된 프로그램이었는데, 결정적 선택의 순간에 주인공은 망설이다 주먹을 불끈 쥐며 이렇게 외친다. “그래! 결심했어!” 한 줄기로 흘러오던 이야기가, 이 말과 동시에 두 갈래로 갈라져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상황은 다르지만, 맥락은 비슷했다.
‘도의적인 마음’과 ‘실질적인 마음’의 싸움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겪게 될 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런 상황이다. 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상사의 비리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이 사실을 알릴 것인지 아니면 그냥 묻고 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된다. 사실을 알린다면 잘못된 것을 바로잡게 되는 것이고, 그냥 묻는다면 상사에게 일정의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인과응보’
가장 이상(理想) 적인 모습이다. 그렇다고 믿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러지 않은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그래서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남들은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아도 오히려 잘 살고 있는데, 잘 지키면서 열심히 사는 자신만 손해 보는 느낌. 삶에서 가장 허무한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삐뚤어질 테야!” 어떤 개그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멘트인데, 이 말처럼 그러고 싶어진다. 그렇게 복수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누가 손해일까?
내가 삐뚤어지면, 나를 삐뚤어지게 만든 사람이나 상황이 좋은 방향으로 돌아설까? 아니다. 예상하는 것처럼, 그에 대한 책임은 본인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두 배 세배 힘듦과 고통이 자신을 짓누르게 되고 그에 따른 후회로 몸서리치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은 한 번의 실수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지만, 힘이 없는 사람은 한 번의 작은 실수가 평생을 옥죄어 온다. 우리는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통해 이미 배웠다.
믿음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그 시간과 때를 알 수 없을 뿐이다. 자신의 소신을 믿어야 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끝없이 올라갈 것 같은 사람은 결국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높이 올라갈수록 떨어질 때의 고통도 더 크다. 높이 올라가는 것에 속상해할 것이 아니라, 떨어지는 고통이 더 크다는 것을 오히려 안쓰럽게 바라봐야 한다. 마음이 쉽게 따라오지 않겠지만, 그러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더라도, 최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한다.
어른도 마찬가지지만, 아이들은 어떤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이렇게 말한다. “**이도 그랬어요!” 자기 친구도 그랬으니, 자신도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자신의 잘못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타인의 잘못으로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하려 한다. 이 생각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이 죽는다고 따라 죽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타인의 잘못 뒤에 숨지 말아야 한다. 저 사람도 그랬는데 자신도 그래도 되는 거 아니냐며 퉁 치려고 하면 안 된다. 자신의 인생에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