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의 편안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리고 행동』
문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문장을 꾸미는 것을, ‘수사법’이라 한다.
수사법은 문장뿐만 아니라 대화에서도 시의적절하게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전달하는 느낌의 무게감을 다르게 할 수 있다. 요리할 때 풍부한 맛을 내기 위해 사용하는, 양념이라고 하면 비유가 적절하려나? 그냥 말하거나 써도 의미는 통하겠지만, 임팩트! 머리나 마음에 꽂히는 강도가 다르다. 임팩트가 강하면 타인의 생각을 변화시키거나, 타인에게 오랜 시간 영향을 주기도 한다. 책의 한 문장 그리고 누군가의 한마디가, 인생에 기준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죽어야 산다.’
수사법 중에 변화법, 변화법 중에 역설법이다. 모순되는 말 같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수사법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표현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아우성’이라는 말은 떠들썩하게 지르는 소리라는 표현인데, 소리가 없단다. 마음껏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어떻게든 해보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 ‘죽어야 산다’라는 표현도 그렇다. 너무 살고 싶어서 죽기로 작정한 심정이, 듣는 사람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든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대사에도 담겨 있다.
수많은 적군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병사들. 이런 병사들의 두려운 마음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죽어야겠지. 내가” 군사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고 믿고, 희생을 결정하는 리더. 그 리더의 용기로 군사들의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었고, 전사가 되어 싸운다. 그리고 승리한다.
개인의 희생으로 공동체를 살렸다.
영화에서는 이순신 장군 말고도, 한 군사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공동체를 살린다. 폭탄이 실린 배에 올라 적군의 배와 충돌한다. 그로 인해 많은 군사를 살린다. 그러고 보면,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개인의 희생이 있었다. 그 희생으로 위험한 상황을 잘 막았고, 기회를 만들었다. 한 사람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은, 소름 돋는 일이다.
개인의 희생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역사에서도 그랬듯이, 자발적인 희생만이 빛을 발한다. 타인의 강요에 의한 희생은 말 그대로 희생일 뿐, 그 어떤 의미도 주지 못한다. 희생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게 한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공동체는, 잠재된 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방치할수록 그 강도는 점점 부풀어 오른다. 그 폭탄을 제거하지 않으면, 희생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이 희생양이 된다.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의 희생이 없다면, 공동체 모두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은 피할 수 없다. 지하철 좌석은 7명이 앉을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8명의 사람이 앉았다고 가정하면, 8명 모두 불편하게 이동해야 한다. 이때 어떤 1명이 일어서면, 다른 7명은 편하게 갈 수 있다. 1명의 희생으로 7명이 편안해진다. 그럼 일어선 1명은 불편할까? 양보를 해본 사람은 안다.
희생을 거창하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폭탄을 들고 혼자 적진에 뛰어들어야 한다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쥐라면 오금이 저리다. 하지만 우리가 희생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작다. 지하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이 먹을 때 먹고 싶은 거 하나 덜먹는 것,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잠시 잡아주는 것, 먼저 인사하는 것 등 조금만 마음을 내어놓으면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수혜를 타인이 아니라 자신이 받는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