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 공평

by 청리성 김작가
『어떤 마음이냐에 따라 불만이 될 수도, 감사가 될 수도 있는 상황』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이다.

맞는 말일까? 같은 출발선에서 출발하고 같은 인원이 부딪히고 같은 기회가 주어지니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스포츠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렇게 들었고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질문을 듣게 되면, 생각하게 된다. ‘어! 아닐 수도 있겠는데?’

평등(Equality)과 공평(Equity)은 같은 말일까?

질문을 이렇게 바꿔봤다. 비슷한 두 개의 그림과 그 아래 적혀있던 두 개의 단어를 봤다. 뭐가 다른지 살펴보다, 그림에서 다른 점을 보고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어?’ 당연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게 됐다. 더 무겁게 받아들이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 생각인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뻗칠 수 있는 영향이 얼마나 되겠냐마는, 실상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도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어찌 공평하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나를 수혜자로 놓고 질문을 받으면, 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하지만, 나를 시혜자로 놓고 질문을 받으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자신이 공평한데 왜?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이 부분에서 당당할 순 없다. 내가 주장하는 공평을 누군가 불공평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생각 조심, 그리고 말조심!


공평하지 않다는 다수는, 자신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더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 그럴까?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한참 경제가 성장할 때 생긴 용어다. 자동차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동차가 생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신호 대기 선에 서 있는데, 한참 어린 사람이 몇 배는 좋은 자동차 핸들을 잡은 것을 본다. 기쁨은 불만으로 변한다. 이렇게 타인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밑으로 밀어 넣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이다. 모든 것을 그런 시선으로 바라본다.


공평하다고 말하는, 오히려 과분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는 건 아니지만,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환경의 사람을 생각한다. 한여름에, 입버릇처럼 덥다는 말이 나오다가, 외부에서 땀 흘리며 일하시는 분들을 보면 그 말이 쏙 들어간다. 내가 제일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했는데,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사람을 보면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든다. 내가 제일 힘들고 제일 어려운 줄 알았는데, 아니니 말이다.


차이는 단 하나다.

‘자비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어느 쪽 생각에 더 마음이 기울었느냐에 따라, ‘감사’가 될 수도 ‘불만’이 될 수도 있다. 역으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감사함이 더 크면, 자비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불만이 더 크면, 자비를 입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쪽인가?

장담하기 어렵다. 어쩌면 불만에 발을 딛고 있지만, 감사를 지향하는 게 사람 아닐까? 딱! 하고 드는 느낌은 불만이다. 하지만 감사할 것을 찾아 그쪽으로 마음을 기울이려 노력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는 그런 모습 말이다. 공평할 수 없는 세상이지만, 내가 받은 좋은 몫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달라지지 않은 상황이라면, 내 마음만은 좋은 곳에 머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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