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으로 온전히 마주할 때,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 』
“아빠, 빵 좀 사주실 수 있으세요?”
이 질문이 어떻게 들리는가? 고개가 끄덕여지는가 아니면 갸우뚱하게 되는가? 보통은 좀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 보통은 이렇게 질문하기 때문이다. “아빠, 빵 좀 사주시면 안 돼요?” 어른들도 어디서 배웠는지 그 출처를 알 수 없지만, 이런 표현의 질문을 많이 한다. “해주시면 안 돼요?”, “보내주시면 안 돼요?”, “가주시면 안 돼요?” 등등. 안 되냐고 끝을 맺는다. 원하는 건 상대방이 해주고 보내주고 가주는 것인데, 말끝은 안 되냐고 묻는다. 한 번도 심각하게, 왜 그랬는지 고민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언제부턴가 이 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뇌는 생각보다 부지런하지 않다는 말을 듣고 난 이후로 기억된다. 사람의 뇌는 부지런하지 않기 때문에 바로 수긍할 수 있는 답을 찾는다고 한다. 그래서 질문하는 방법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질문해야 내가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지를 말이다. 실제 그렇다. 같은 내용이지만 어떻게 질문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의 답변이 달라지는 경험을 많이 한다.
‘부정문으로 질문하면, 부정적인 답변을 듣기 쉽다.’
내가 내린 결론이다. 안 되냐고 끝을 맺으면, 안 된다는 답을 하고 싶어진다. “어, 안 돼” 그리고 또 하나, 부정문으로 끝을 맺는 질문은, 요구하는 사람의 의지가 약하다고 느끼게 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느낌이랄까? 반드시 들어줘야 할 마음의 부담이 적어진다.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조금은 편안하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방법을 다르게 하도록 했다.
안되냐는 질문 뒤에는 안 된다는 대답으로 맞받아친다. 그러면 아이들은 정정해서 다시 질문한다. 처음에는 “해줘도 돼요?”라고 끝을 맺었는데, 본인들이 말하고도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다, “해주실 수 있으세요?”라는 맺음말로 정리가 되었다. 그럼 나는 무리가 되지 않는 이상, “그래!”라는 답변으로 아이들의 기대에 부응한다. 지금도 항상 이렇게 질문하는 건 아니지만, 의식하고 질문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가능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 가능성. 이 가능성을 높이는데 가장 비중을 차지하는 게 무엇일지 생각해 본다. 바라고 원한다는 것은, 내 의지보다 누군가의 의지 아니면 운이라고 표현하는 타이밍 같은 것이 맞아야 한다. 내 역량으로 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이라면, 그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부탁해야 한다. 대출의 경우는, 규제 정책이 걸려있으면 받을 수 없다. 비슷한 조건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타이밍이 잘 맞아야 한다.
가능성은 믿음으로 물어야 한다.
될 수 있다는 믿음,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물어야 확률이 높아진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다. ‘되겠어?’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거의 수주받지 못했다. ‘따낼 거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프로젝트는, 거의 수주를 받았다. 선정하는 사람들에게 그 마음이 전달된 것이라 생각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이것을 ‘기싸움’이라고 표현한다.
될지 안 될지 모르겠다는 마음으로 마주한 사람과 될 것 같다는 마음으로 마주한 사람은 눈빛 자체가 다르다. 자세와 몸짓도 다르다. 말에 실리는 무게도 다르다. 상대가 선택한 것 같지만, 선택되게 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라고 믿는다. 내가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떤 사람을 곁에 두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잘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과 잘 할 수 있다는 사람 중에 누구를 선택하겠느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