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기회

by 청리성 김작가
『누군가한테는 흔한 일상이라 불리지만, 누군가한테는 단 한 번이라 불리는 시간』

모든 선수가 다 출전하지 않는, 단체경기가 있다.

얼마 전에 끝난 올림픽도 그렇다. 많은 사람이 승리를 염원하고 응원했던 야구, 축구, 배구 등이 그렇다. 이런 종목은 주전 선수와 예비 선수가 있다. 거의 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와 상황에 따라 잠깐 투입되는 선수가 있다. 대부분은 조금이라도 경기에 출전하지만, 전혀 출전하지 않는 선수가 있기도 하다.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는 예비 선수라도 국내에서 손꼽히는 선수라 출전 가능성이 크지만, 국내 프로 리그에서는 그렇지 않다. 1군 등록도 못 해보고 은퇴하는 선수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프로야구를 좋아해서, 경기를 자주 본다.

기아 펜이긴 하지만, 경기를 자주 보면 다른 팀 선수도 눈에 익는다. 때로는 기아 선수나 다른 팀 선수 중에, 처음 보는 선수가 등장할 때가 있다. 신인 선수가 대부분이지만 데뷔하고 시간이 지나서 1군에 등록된 선수도 있다. 해설자가 설명해 주는 과정을 들으면, 마음이 잔잔하게 울린다. 수술과 재활훈련으로 몇 년의 시간과 싸워 이기고 등장한 선수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처음 보는 선수지만,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볼 때가 많다.

마치 지금 아니면 다시는 출전하지 못할 선수처럼, 눈에서는 살기마저 감돈다. 경기에 대한 집중력과 열정으로 드러난 플레이는, 나도 모르게 손뼉을 치게 만든다. 어렵게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라 느껴졌다. 지금은 실력으로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분위기라 다행이라 생각한다. 네임밸류에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가 커졌다. 가능성이 눈에 보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천지 차이다. 새로 기회를 부여받은 선수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뛰는 건, 또 다른 예비 선수에게 쏘아 올리는, 희망의 신호탄이라는 생각도 든다. “너도 할 수 있어!”


단체경기에서 올린 성과는 주전들만의 몫일까?

아니라는 건 모두가 잘 안다. 올림픽이나 국제 경기에서 메달을 따면, 등록된 모든 선수에게 메달을 준다. 국내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주전이나 예비 선수 모두에게 우승 반지가 주어진다. 많이 뛴 선수나 적게 뛴 선수 아니 아예 뛰지 못한 선수에게도 보상이 주어진다. 주전으로 뛴 선수가 “우리가 열심히 해서 성적을 냈는데, 왜 출전을 거의 하지도 않은 저 사람들까지 보상을 받냐?”라고 따진 사람이 있을까? 검색해 보면 나올 수도 있겠지만, 내 기억에는 없다. 아마 없을 것으로 확신한다.

한 프로야구 감독이 주전 선수에게 던진 메시지를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두 달 전, 한 프로야구 감독이 주전 선수에게 일침을 가했다는 기사를 봤다. 주전에게는 매일 치러야 하는 한 경기에 불과할지 몰라도, 예비 선수에게는 간절한 한 경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책임감을 느끼고 경기에 임하라고.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라는 말처럼.


간절함을 어디에 비할까?

누군가 이렇게 제안했다고 가정해 보자. “열심히 주전으로 뛸래? 아니면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있을래? 보상은 같이해줄게” 후자를 선택하는 선수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 사람은 선수가 아니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선수는 경기장에 있어야 빛을 발한다.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있어야 빛을 발한다. 그런 사람이 빛을 발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데, 그것이 편안하다고 말할 순 없다.

지금 하는 일이나 위치가 힘들 수 있다.

하지만 원하더라도,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조금은 느껴야 하지 않을까?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을 왜 내가 느껴야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최소한 미안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더 열심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의 자리를 내가 차지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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