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 내가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마음』
말과 생활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표현이 있다.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건강해진다. 하지만 의사처럼 생활하면 건강하기 어렵다.”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듣고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들었다. 클라이언트가 제약회사 마케팅이다 보니, 자연스레 의사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거나 함께 일할 기회가 있다. 의사라는 타이틀을 마냥 부러워할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의사가 되기까지도 매우 힘들지만, 의사가 됐어도 그리 쉬운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실이나 진료실을 방문했던 적도 있었다.
의원은 몸이 불편해 진료를 받으러 가기도 하지만, 그때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일로 방문했을 때는, 눈에 들어오는 공간이 다르고 느낌도 다르다. 의사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일을 하기 위해 마주하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많은 연구실과 진료실을 방문한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느꼈던 건 공간에서 오는 압박감이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2~3평 남짓한 공간에서 종일 앉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그랬다.
학회 일로 교수님 연구실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일이지만, 내 눈에 들어온 모습과 느낌이 기억난다. 거의 처음 의대 교수님의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라 더 그렇지 않았나 생각된다. 기억에 남아있다는 건, 아주 좋거나 몹시 나쁘거나 아니면 생각과 현실의 차이가 클 때이다.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는 이유는, 맨 마지막에 해당한다. 드라마에서 봤던 모습도 상상했던 모습도 아니었다.
낮이었지만 어두웠다.
입구에는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낮은 탁자와 소파가 있었다. 매우 낡았고 이런저런 물건들로 어수선했다. 언제 마셨는지 모를 음료와 커피 컵도 보였다. 책상에는 A4 용지로 출력된 많은 양의 종이와 책들이 아슬아슬하게 탑을 쌓고 있었다. 옷걸이에는 몇 개의 옷이, 던져서 걸린 듯한 모양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뭐지?’
방에 들어서고 살짝 당황한 채로 서 있자, 교수님은 책상에서 하시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소파에 있는 물건을 치워,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셨다. 너저분한 공간에 불러서 미안하다는 말도 빼놓지 않으셨다. 누군가 방문했을 때 가져왔을 법한 음료수를 내주셨다. 연신 잘 부탁한다는 말씀도 하셨다. 일을 받아서 하는 사람은 우리지만, 교수님은 마치 어려운 부탁을 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말씀하시며 예우해 주셨다. 절대 ‘갑’이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낯설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조건 열심히 그리고 잘 해드려야지!’
‘을’로 사는 사람은 안다.
‘갑’의 존재를. ‘갑’은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다. 선택권이 내가 아닌 타인에게 있을 때, 선택권을 가진 사람이 ‘갑’이라고 한다. 그래서 ‘을’은 ‘갑’에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을’만 선택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까? ‘갑’은 선택만 하는 사람일까? 단언컨대, 아니다. 사실 누구도 절대 ‘갑’이 될 수 없고, 절대 ‘을’이 되지도 않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을’이지만 ‘갑’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갑’이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을’이 해주어야 ‘갑’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은 ‘을’을 예우한다. 그래야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협력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예우해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마음은 인위적으로 발휘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한두 번은 어떻게 하겠지만, 지속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음으로 섬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타인을 위해서도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필요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