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더 큰 걸림에 주의할 것을 알려주거나,
더 좋은 길로 안내해 주는 메시지』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
많이 들어본 속담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어릴 때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안 좋으면, 약을 먹었다. 왜 약은 그렇게 쓰게 만들었는지, 몸이 아픈 것보다 약 먹는 게 더 고통스러웠다. 한 손에는 막대 사탕을 들고, 입에 털어 넣어주시는 약을 받아먹은 기억도 난다. 입에 쓴 약은 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못 먹진 않았다.
가장 고생하면 먹었던 약은, 알약이었다.
작은 알약 한 개를 목으로 넘기기 위해, 작은 주전자 한 통의 물을 다 비우기도 했다. 물만 꼴깍꼴깍 잘 넘어갔고, 알약은 언제나 목 제일 안쪽에 멈춰있었다. 한 번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알약을 깨서 가루로 만들었다. 하지만 목에 넘기는 순간 약은 물론 그전에 먹었던 음식까지 올리고 말았다. 평소 먹던 가루약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쓴맛이 강했고, 그 느낌은 위안에 있던 음식물을 끌어올리는 마중물 역할을 했다.
지금은 몇 개의 알약도 한 번에 넘긴다.
아주 적은 양의 물로도 가볍게 넘길 수 있다. 자랑할 건 아니지만. 중학생 때까지 알약을 먹지 못했던 건,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작은 알갱이로 된 비타민으로 연습을 했다. 목으로 넘기는 연습. 그렇게 몇 번을 하다, 조금 더 큰 알갱이로 바꿨고 나중에는 알약 크기 정도로 도전을 했었다. 처음 성공했을 때, 느낌이 왔다.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감을 잡았다. 왜 그동안 넘기지 못했는지 원인도 알게 되었다.
목구멍이 열리지 않으면, 알약은 넘어가지 않는다.
물과 함께 쓸려 내려갈 수 있도록 목구멍을 열어줘야 했다. 하지만 그전에는 꿀꺽하면서 목구멍도 함께 닫아버렸다. 물은 넘어갔지만, 알약은 그대로 남아있던 이유다. 목구멍을 닫았던 이유는, 목에 걸릴 것 같은 두려움도 한몫했다. 생선 가시나 국수가 목에 걸려본 사람은, 목에 무언가가 걸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안다. 두 가지 모두 경험을 했던 나는,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함과 함께 두려움이 깔려있었다.
걸리는 느낌은, 불편함과 함께 두려움을 준다.
목에 걸리는 건 앞선 경험에서 말했듯,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 다리에 무언가가 걸려 넘어질 뻔하거나 넘어져도 매우 불편하다.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몸도 불편하지만, 짜증이 올라오는 마음도 불편하다. 운전하다 만나는 과속방지턱도 불편하다. 속도를 줄이는 것도 그렇고, 보지 못했을 땐, 심한 덜컹거림을 감내해야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걸림은 무조건 불편하고 두렵기만 한 존재일까?
걸림은, 주의를 불러온다.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고 다음에는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다. 음식이 목에 걸렸던 경험은, 조심해서 음식을 먹게 만든다. 발에 무언가 걸렸던 지점 근처를 가면, 발아래를 자세히 살피게 된다. 심하게 덜컹거린 지점에 도달하면 속도를 줄이고 전방을 주시하게 된다. 다시는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고 살피게 된다.
인생에서 걸림은, 생각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온다.
계획하지 않았고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 인생의 과속방지턱을 넘는 느낌을 경험한다. 덜컹거리고 말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쪽으로 넘어지거나 뒤집히면 정말 막막해진다. 크진 않지만 그런 경험을 몇 번 해보니 알겠더라. 왜 그런 걸림이 왔는지.
주의하라는 메시지였다.
더 큰 방지턱을 만나기 전에 주의하라고 알려준 메시지였다. 다른 길이 더 좋은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 메시지였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래서 걸림이 오면 주의를 기울인다. 지금 이 걸림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지. 혹 좋은 메시지가 아니면 어떠한가? 지금까지 얻어먹은 복이 얼마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