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욕심

by 청리성 김작가


『모두가 나를 좋게 보기를 바라는 것』

쌍둥이도 자세히 보면, 다르다고 한다.

똑같아 보이는 얼굴은 있어도, 똑같은 얼굴은 없다는 말이다. 성향이 같은 사람은 더욱 없다. 비슷할 순 있지만 같을 순 없다. 이렇듯 각양각색인 사람들을 모두 만족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공동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정책을 만들 때, 서로 다른 의견을 잘 정리해야 한다. 모두가 만족할 순 없어도, 수긍할 수 있도록은 해야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다.


개인은 어떨까?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각인데,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맞춰야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일관성을 지킬 수 있고, 나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 이럴 때는 이렇게 저럴 때는 저렇게, 잣대가 수시로 바뀌는 사람은 함께 하기 불편하다. 종잡을 수 없는 말과 행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어느 쪽으로 행동해도 누군가는 비난하게 되어 있다.

10여 년 전쯤 절실하게 느낀 사례가 있었다. 관리자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실무자와 다를 바 없이 실무도 하면서 관리도 했었다. 실무자들이 힘들어하든 말든 내 일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그건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여기에 있으면 제 10년의 미래가 부장님일 텐데, 저는 10년 후에도 부장님처럼 그렇게 일하면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충격이었다.

내 생각에는 열심히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직원은 나이가 들고 직급이 올라가면,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를 보니 여유는 고사하고 오히려 더 많은 일에 치이고, 책임까지 떠안아야 하는 게 싫었다고 한다. 10년 후에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비전을 잃게 했다고 한다.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당황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데, 지금을 걸 순 없는 일이다.


관리자로서 충실하게 일했다.

실무과 관리를 함께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관리자여도, 사람인지라, 다른 실무자의 일보다 내가 맡은 일에 더 신경을 쓰게 됐다. 그러면서 다른 프로젝트의 문제를 놓치는 실수가 생겼다. 그래서 실무에서 손을 뗐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전반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지, 실무를 직접 하지는 않았다. 그랬더니 어떤 직원이, 내가 일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닌다는 얘기를 들었다. 황당했다. 실무자가 이해할 수 없는, 관리자의 일을 편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


다른 태도였지만, 보는 시선이 달랐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놨고, 저렇게 하면 이렇게 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놨다. 어떻게 해도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데, 어떻게 해도 나쁜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개중에는 반대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관리자로서 실무를 열심히 도와주는 모습에서 많이 배웠다는 직원도 있었다. 관리자로서 짊어지고 있는 무게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직원도 있었다. 모두가 나쁘게 보지도 좋게 보지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러리라, 99.9% 확신한다.


어떻게 바라봐 줄지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할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전혀 무시할 순 없지만, 그보다 자기 생각이 먼저여야 한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내 생각인지 명확하게 살피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그 후에, 고개를 들고 둘러봐도 된다. 나를 지지하는 모습도 그렇지 않은 모습도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어느 쪽이든 지지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모습이 더 낫겠는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98. 확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