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길어내는 것』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다.’
8년 전, ‘복음화 학교’라는 곳에 들어갔다. 명동성당 옆 교육관에서 진행된 교육이었다. 매주 월요일 저녁에 수업을 들었는데, 1단계부터 5단계까지 총 1년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한창 실무로 정신없이 보내고 있을 때였고, 주중 출장도 심심찮게 있던 상황이라 시작하기를 꺼렸었다. 하지만 나에게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시작했다. ‘어떻게든 해주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첫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이것이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멋진 말은 아니다.
처음 들었을 때 좀 투박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촌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멋진 말도 많은데 굳이 왜 첫 시간에, 이 말을 강조하셨는지 의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말이 계속 떠올랐다.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할 때, 이 말이 떠올랐다.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는 CM처럼, “잠깐만! 잠깐만!”이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다시 생각할 시간을 갖게 했고, 그렇게 다시 생각한 결론은, 기존에 하려던 행동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행동의 결과들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는 기억나진 않지만, 다시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 옳았다는 생각은, 확실히 기억난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참 멋지게 들렸던 말이다. 그리고 ‘아!’하게 만들었던 말이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행동이라는 말과 비슷한 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으로 멈춰있어서는 안 되고, 행동으로 움직여야 완성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생각으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지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럴까?’, ‘과연 될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발목을 꽉 잡고 있으니 말이다.
믿음으로 과감하게 했던 행동이 있었다.
퇴사다. 8년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밀어내려는 느낌을 받고,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었다. 나에게는 일곱 척의 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 셋과 많은 빚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벌지 못하면 당장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지금도 별반 차이는 없지만, 그때는 좀 더 심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괴로워하고 있던 시기는, 복음화 학교 졸업을 앞둔 때였다. 너무 괴로운 마음에 수업도 빠질까 생각하다, 동아줄 잡는 심정으로 참석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항상 너와 함께 있겠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지하철을 타러 걷고 있던, 어두운 밤길에 이 소리가 마음에서부터 올라왔다. 온몸이 짜릿했다. 가슴은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멍하게 걷고 있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믿고 있다고는 했지만, 두려움에 싸여 있던 나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려준 사건이었다. 다음날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아무 대책 없이 회사를 나왔다. 그리고 한 달 정도 지나,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와 연이 닿아 입사하게 되었다.
한 곳에 발을 디딘 상태로는,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다.
발을 떼야 어디든 옮길 수 있다. 발을 떼야 할 때가 닥치면 고민하게 마련이다. 지금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옮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을 떼야 할 때, 뗄 수 있는 용기는 온전히 믿는 데서 나온다.
믿음은 단순히 마음에서 오는 게 아니다.
행동을 통해서 온다. 작은 행동의 결과를 믿고 따르다 보면, 큰 행동을 해야 할 때, 행동할 수 있는 믿음이 흘러나온다. 100만 원을 빌려준 사람에게 100만 원을 돌려받으면, 다음에는 500만 원 1,000만 원을 빌려줄 수 있는 믿음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