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 이해

by 청리성 김작가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타인의 겉이 아닌 속을 헤아리려는 노력』

정말 미운 사람이 있는가?

누구나 이 질문을 받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한둘은 있다고 본다. 어쩌면 미운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이 동일 인물일 수도 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듯, 극과 극으로 치닫는 사람이다. 일명 웬수. 할머니들이 자주 사용하시는 표현이다. 미움과 사랑 중 한쪽을 택해야 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분들 대부분은, 사랑이지 않나 싶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움의 감정도 더 커지니 말이다. 안 했으면 하는 걸 굳이 그렇게 열심히 하니, 그럴 만도 하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다.

화를 내는 사람에게서 슬픔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있다. 그 기분이 참 묘했다. 막 화를 내는데 그 모습이 슬퍼 보였다. 전에는 싫고 짜증이 났지만, 어떤 순간에는 짜증이 아닌, 슬픔을 발견했다. 짜증을 느꼈을 때는 그 사람이 미웠다. 왜 그러는지 이해도 되지 않았고, 그러는 모습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슬픔을 발견한 순간, 마음이 짠해 왔다.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했다고 할까?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왜 그러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렇다고 화내는 행동을 인정하는 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는 것과 그래도 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미움의 마음이, 이해의 마음으로 돌아섰을까?

겉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그러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왜 저럴까를 몇 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어떤 마음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짐작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이해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해되는 순간, 그 어떤 말도 아프지 않았다. 전에는 가슴을 후벼팠던 말인데 아프지 않았다. 그 말은 내 마음의 어떤 부분도 상처를 내지 못했다.


미운 마음을 이해했더니, 내가 다치지 않았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건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을 뿐인데, 내가 보호를 받게 되었다.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아! 이래서 그렇구나?’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으니, 미워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었다.


미워하는 사람을 일부러 용서하기 위해 애쓸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을 이해해 보려는 노력, 그 사람의 겉이 아닌 속을 살펴보는 시도만 해보는 거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이미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더러는 이해가 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상황이 이해될 수도 있다. 이해하는 건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위해서다. 내 마음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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