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 공간

by 청리성 김작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색깔』

집은 건물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사람이나 동물이 추위, 더위, 비바람 따위를 막고 그 속에 들어 살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라고 되어 있다. 이 설명을 보면, 원시시대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반영한 설명은 이렇다. ‘가정을 이루고 생활하는 집안.’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1인 가구’라는 표현이 흔해졌지만, 대체로 집은 가정 공동체가 함께 생활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집 자체를 가정 공동체의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누구 집 자녀냐?”, “집에서 잘 배웠네.” 등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지만, 옛 어른들이 주로 그렇게 사용하셨다. 집을 단순한 건물로 한정 짓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그 자체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공간이 곧, 그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혈액형처럼, 어디 학교 출신의 성향은 어떻고 어디 팀의 색깔을 어떻고 하는 걸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공간을 정의하는 건 사람이다.

그 공간이 원래 어떤 성향을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통해 그 공간의 성향이 정해진다. 그래서 처음 공동체의 색깔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나중에 공동체에 합류한 사람들은, 이 공간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고 흡수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공동체의 색깔을 바꾸려 들지만, 쉽지 않다. 이런 사례는 주변에서도 보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종종 다루는 소제이기도 하다.


공동체의 색깔을 바꾸는 것은 그만큼 어렵다.

누군가 총대를 메지 않으면 시작조차 할 수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고 결정을 해도, 누가 달지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양이라는 공동의 두려움 혹은 불편함 아니면 원치 않는 그 무엇과 함께, 그것을 감수하면서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 공간을 떠나는 사람이 방울을 달고 나가길 바란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떠나는 사람은 아쉬울 게 없으니 말이다.

공간을 떠나지 않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원하지 않는 색깔을 바꾸거나 받아들여야 한다. 바꾸기 위한 용기와 노력을 발휘할 것이냐, 받아들이는 용기와 인내를 발휘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한다. 어떤 선택을 하든, 용기가 필요하다. 받아들이는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의구심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내 색깔을 죽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어정쩡하게 받아들이면, 불편과 불만의 마음에 휩싸여 살아가야 한다.


용기를 내야 할 때, 용기를 내는 결단이 필요하다.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벌어지지 않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행동하지 않고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상상으로 발을 떼지 못할 때가 많다. 시간이 지나서 그때 발을 떼지 못한 것을 후회한 적도 많았다. 아마 시간이 지나도 이럴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 용기를 내는 결단이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는 과감한 결단을 하기 위해, 마음에 은장도를 품어야겠다. 함께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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